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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曜 隨筆) 김근숙 ‘언덕 위에서’
 
수필가 김근숙
▲ 수필가 김근숙 

 

 

세상의 판은 희한하게 돌아간다.

 

경사진 길을 힘들게 걷지만, 세상의 판은 희한하게 돌아간다. 하늘 위를 맴도는 것은 야생의 독수리가 아니고 검은 비구름을 품고 햇살을 감추려는 여우와 이리가 하늘을 난다. 삶의 진실은 비구름에 걸려 절뚝댄다.

 

언덕 아래에선 좁고 비탈져 힘들 텐데도 서로 밀치며 먼저 오르려고 돌팔매 한다. 나도 그중에 끼여 두리번거리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 쉴 새 없이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낑낑댄다. 언제나 그렇듯 땀을 닦기 위해 손수건을 준비하고 가방에 넣고 다녀도 땀이 흐를 때 손등으로 쓱 닦고 예사로이 다닌다.

 

늘 그렇듯 행동이 앞선다. 생각하고 고려하여 검증된 말, 행동이 아니고 무심히 본능적으로 한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러면서 옆 사람을 밀치며 먼저 올라가려고 난리다.

 

언덕을 올라가니 아래는 허허롭다 희뿌옇게 나란히 선 건물은 있는데 무슨 건물인지 모르겠다. 그토록 바락 거리며 먼저 가려 했던 이유를 모르겠다.

 

삶은 정답이 없다. 과정은 있지만 정답을 내려고 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언덕은 삶의 고비를 가리킨다고 여긴다. 신기루 같다. 희망과 행복을 가진 봉우리라 여긴다.

 

이분법적 사고를 그대로 드러낸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사람들에게서 여러 가지를 놓쳐 온 것, 지금에 와서 깨닫게 되는 어느 날의 진실 등이 많았다고 여긴다.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하고 말마다 비판은 잘하지만 거친 나의 행동은 좀처럼 고치려 들지 않는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그대로 드러낸다. 사람 되는 공부를 하여 사람다워지려고 인문학을 배우고, 이 강좌 저 강좌 뛰어다녀도 , 사람은 고쳐 쓰기 어렵구나만 깨달을 뿐이다.

 

난 이제 비탈진 길을, 길도 없는 길을, 남이 다져 논 신작로 길을 겁도 없이 부끄러움도 없이 걸어갈 것이다. 모퉁이를 돌아 또 다른 언덕이 보인다. 이 고비가 마지막이기를 바라면서 꺼억 대며 앞서가려고 발걸음을 옮긴다.

 

바다가 보인다. 동해의 앞 바다 물결은 흰 포말을 감으며 푸른빛을 띠고, 동해 물길 따라 부산까지 가리라 생각하니 순수하고 거짓 없던 시절 그리워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양양 하조대에서 바라다본 바다의 며칠 전 기억이다. 하조대 정자 길을 내려오며 절뚝거리는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의 밝은 모습을 본다.

 

언덕 위에서 푸른 바다를 보며 애써 삶이 비록 나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않겠다는러시아의 시인 푸시킨의 노래 한 구절이 떠오른다. 흐르는 물처럼 나도 흘러가겠지, 그게 인생이구나 자조하면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흐르는 땀을 씻는다.

 

언젠가 할 말을 심사숙고하고 차분하게 침착하게 나의 생각을 정리해서 책임 있고, 성실한 자세로 정의롭게 할 말을 할 때가 오리라. 죽음 가까이에서 삶의 언덕 지점을 본다.

 

김근숙 프로필

 

부산출생

2020 계간 문파시 등단

2020 계간 미래시학수필 등단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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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8/18 [17:03]  최종편집: ⓒ 투데이리뷰 & 영광뉴스.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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