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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월드> 이현숙 수필가 ‘쇳대 맹키’
 
이현숙 수필가

 

키가 완전히 고장 났다.

 

전지를 바꾸어 끼우고 이리저리 건드렸더니 며칠 작동되었는데, 오늘은 통사정해도 도무지 반응이 없다. 신발장 서랍을 뒤졌다. 오래전에 쓰던 열쇠가 하나 나왔다. 현관 손잡이 가운데에 밀어 넣고 돌리니 간단했다. 고모님의 금니가 떠올랐다.

 “네? 무슨 말씀 하셨어요?”

 

  pixabay.com



시고모님의 웃음 가득한 얼굴에 금니가 반짝거렸다. 식혜를 받쳐 들고 안방에 들어갔을 때였다.

 

“아~~따! 질부는 여직도 모른당가! 쇳대 말이세~. 문 꽉 잠가분 거 마세. 쇠통 안 있능가. 어쩌구 열 것능가? 금 쇳대가 열 것능가, 은 쇳대가 열 것능가. 뭔 소용이여~, 큰 놈이고 이쁜 놈이고 다 부질없제. 질부는 딱 쇳대여~! 글잔혀도 목구멍이 간질간질헌디~, 딱! 감주를 내오질 않능가! 보소! 아까는 우리 노인덜 끼리 맘껏 놀으라고 딱~ 한 상 차려놓고, 질부 볼일 보러 나갔다 옹께로, 우리가 덜 미안하고 을매나 좋은가, 어찌 그리 맴에 딱인지!”

 

마치 사설시조나 판소리 한가락 하듯 장단까지 맞추셨다. ‘딱’이라는 발음을 ‘따악’이라고 늘이며 운을 맞추셨다. 그제야 귀에 쏙 들어왔다. ‘질부는 딱 쇳대 맹키로…!’라는 말이었다. 강한 남도 억양에 부딪혀 단어를 놓치기 일쑤였다. 말투로 내용을 짐작할 때가 많았다.

 

시고모님은 첫인상부터 아랫목같이 따뜻했다. 군산으로 시집가신 고모님은 남도와 북도의 말씨가 섞여 구성졌다. 그 흥겨움은 저녁을 준비하는 부엌까지 따라왔다. 문득, 속에서 무언가 쟁쟁 울렸다. 금이나 은처럼 반짝이고 싶었던 욕망, 높다란 성곽같이 무작정 크고 싶었던 갈망이 놀라서 후들거렸다.

 

삶이란 수많은 과제를 풀어가는 여정이라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때그때 적절한 열쇠가 필요했다. 열쇠가 쓸데없이 크거나, 금으로 될 필요가 있겠나. 열쇠는 고모님 말씀처럼 딱! 들어맞아야 한다. ‘적당’해야 한다.

 

‘적당(適當)’하다’는 말에 나는 헷갈렸었다. 두 가지 의미가 삶의 아주 다른 태도를 가지게 한다. 열쇠처럼 ‘적절하여 마땅하다’, ‘알맞다’의 뜻과, ‘요령껏 엇비슷하게 하거나 말썽만 없을 정도로 대강대강하다’의 뜻이 그것이다.

 

아버지는 꼭 들어맞게 잘해야 한다는 뜻으로 말씀하실 때 ‘적당히 하지 말고!’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두 번째 뜻으로 하지 말고, 첫 번째 뜻으로 잘하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알맞은’ 보다는 ‘뛰어나고’ 싶었던 속마음이 들끓고 있어 그 단어에 무심했던지도 모른다.

 

어르신들의 삶에서 나온 지혜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고모님이 가르치신 뜻은 ‘지나치지 않게 알맞은’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멀리서 시집온 어린 새댁에게 너무 애쓰지 말라는 의미도 담긴 애정 어린 말씀이었다.

 

저녁을 준비하면서 전을 부쳤다. 틀니에도 문제없는 석화 전이었다. 낙지는 잘게 다져 메밀가루에 묻혀서 달걀물을 입혔다. 동백기름으로 단장한 백발에 금비녀 은비녀를 찌고, 안방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형님’ ‘동서’ 하는 어르신들은 다정하고도 따뜻해 보였다.

 

시어머님을 중심으로 우리 집에 모이시는 핑계는 계절 따라 피는 꽃같이 여러 가지였다. 어르신 천국에 살게 된 것은, 소원성취로 보면 대박 사건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 …이라는 호칭을 불러보지 못하고 자란 나는, 비 내리는 날 우산을 가져다주는 친구들의 할머니를 오래 쳐다봤었다.

 

유머가 넘치는 고모님을 따라 작은 어머님들도 ‘쇳대’라고 부르셨다. 그때마다 마음에 스며들었는지 삶의 대목 대목에서 ‘쇳대’가 떠올랐다. 알사탕을 굴릴 때마다 침이 도는 것같이, 떠올릴 때마다 무언가 떠오르는 답이 있었다.

 

도끼를 연못에 빠뜨린 나무꾼이 그런 것같이, 금 쇳대 은 쇳대에 현혹되지 말자고도 생각했다. ‘쇳대 질부’는 늘 바빴다. 사건의 열쇠, 사람 사이의 열쇠, 사람 마음의 열쇠…. 열쇠의 입장에서 삶이란 온통 잠긴 자물통투성이였다. 게다가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자물통을 매달고 있지 않은가. 대가족 집안의 ‘쇳대’ 노릇은 쉽지 않았다.

 

세 개였던 열쇠는 달랑 한 개만 남아있다. 동네에 열쇠집이 남아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가게 주인은 너무 쉽게 열쇠를 복사해 주었다. 단돈 삼천 원. 도너츠를 사 들고 돌아오면서 마음도 달콤했다. 문득 향수가 돋아나 구식으로 살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문은, 꿈쩍도 안 했다.

 

“절반밖에 안 돌려지더라고요. 마지막까지 ‘딸깍’해야 하는데….”

 

주인은 다시 열쇠 원본을 받더니 기계에 넣고 돌렸다.

 

“끼르르르 치르르르 끼기기긱 끽끽끽끽”

 

쇠 깎이는 소리에 귀도 찔리고 등골까지 찌륵했다. 사포로 쓱쓱 밀 때는 속이 쓸리는 것 같았다. 새 열쇠도 문을 열지 못했다. 세 번째 열쇠까지 안 열린다고 하자, 주인은 복사된 열쇠를 쓰레기통에 휙 던져버렸다. 괜한 고집이 생겼다.

 

당분간 그냥 불편함을 누려보기로 했다. 열쇠 하나로 숨바꼭질하면서. 비밀의 장소에서 찾아들고 열쇠를 돌리면 왠지 시간이 거슬러 올라간 듯도 하고, 예전의 감각이 살아오지 않겠는가. 귀찮지 않았다.


그런데 열쇠를 들이밀자, 열쇠가 깎이던 소리가 쟁쟁 울렸다. 깎여야, 정확하게 깎여야 열리는 것이었다. 단단하고 어두운 자물통 속에 들이밀기 위해선 먼저 제 몸이 깎여야 하고, 어둠 속에 패인 홈을 정확하게 찾아 들어가야 한다.

 

사람마다 패인 홈이 달랐다. 상담을 공부하게 된 것도 고모님이 붙여준 별명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공부는 자신을 정교하게 깎는 일일까. 제 몸을 깎지 않고는 자물통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열쇠처럼. 사람의 마음에 다가가려면 더구나 그래야 할 듯하다. 공부한다고 지혜가 생기면 얼마나 좋으랴.

 

지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건 아니다. 가끔 깊은 우물도 들여다보고, 맑은 하늘도 쳐다보리라. 마음을 맑히고 밝혀가는 상상을 한다. 고모님 말씀대로 금 쇳대도 큰 쇳대도 아닌, 딱 맞는 ‘쇳대’가 되어갈 수 있으리라. 딸깍, 문이 열린다.

 

이현숙 프로필

 2023 <인간과 문학> 수필 신인상 등단

 2023 <월간문학> 시 신인상 등단

HIS University Ph. D in Family Ministry

HIS University 겸임교수 역임

H·O·M·E INTERNATIONAL 광주대표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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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7/24 [09:22]  최종편집: ⓒ 투데이리뷰 & 영광뉴스.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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