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은 새 생명을 상징하고 끈질긴 민족성 구현
끈질긴 사람을 ‘생명력 대명사’인 잡초와 같아
약용과 의류와 민구(民具)등 생활 재료로 활용
애기똥풀은 젖먹이 아기의 똥 같다고 해 ‘명칭’
한여름 더위에 효과가 있다 해서 ‘더위지기’풀
가족관계 작명이름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밥풀’
한반도에는 4,500여 종의 식물이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1,400여 종의 풀이 자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풀(Grass)은 잡초라고도 부르며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식물로 줄기가 나무질이 아닌 초질(草質)로 이루어진 식물을 일컫는다.
초본(草本)이라고도 한다. 풀은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며 작물의 생장을 방해하고 벌레의 서식ㆍ번식처가 되어 종자에 섞이면 그 작물의 품질을 저하시킨다.
우리 민족과 함께 해 온 풀은 가난, 죽음, 생명 등 모든 생활을 의미할 정도로 상징 범위가 넓다. 봄이면 어김없이 돋아나는 풀은 새 생명을 상징하고 끈질긴 민족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풀을 식용은 물론 약용과 의류와 민구(민간에 전해 오는 일상생활 용구)등 중요한 생활 재료로 활용했다. 끈질긴 사람을 생명력의 대명사인 ‘잡초(Weed)같다’고 한다.
한해살이풀은 당년초. 일년초. 일년생 초본이라고도 하며 1년 이내에 발아, 개화, 결실한 후 시들어 죽는 풀을 말한다. 벼, 콩, 호박, 고마리, 닭의장풀, 여뀌, 나팔꽃, 옥수수, 등이 이에 속한다.
두해살이풀은 그 해에 싹이 트고 그 이듬해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은 뒤 죽는 풀이다. 보리, 무, 유채, 완두 따위가 있다.
여러해살이풀은 숙근초(宿根草),다년초(多年草),숙초(宿草),영년초(永年草)라고도 하며 3년 이상 사는 초본식물(草本植物)이 이에 해당한다. 가을에 땅 위의 부분이 말라 죽어도 뿌리나 땅속줄기가 살아남아 해마다 봄이면 줄기와 잎이 다시 돋아난다.
한해살이풀과 두해살이풀은 뿌리가 수염 모양으로 난 것이 많으나 여러해살이풀은 땅 아래 부분에 뿌리, 줄기, 잎이 변형된 덩이뿌리, 덩이줄기, 뿌리줄기, 비늘줄기가 있으며 양분을 저장하는 것이 많다.
야자나무과나 대나무 등은 본질적으로 풀에 속하는데 지상부가 몇 년 이상 살기 때문에 나무처럼 보인다. 비대 성장하지 않기 때문에 나무가 아니라 특수한 풀이라고 할 수 있다. 콩과, 국화과 등 분류학적으로 초본과 목본이 같은 분류군에 속한 경우도 있다.
‘천불생무록지인(天不生無祿之人) 지부장무명지초(地不長無名之草)’라는 말이 있다. 이는 ‘하늘은 녹(祿)없는 사람을 태어나게 하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풀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풀의 전부를 아는 것이다.
● 풀의 상징과 의미
▽ 신화적 측면
우리의 무속신화 ‘바리데기’ 이야기에서 풀은 죽은 사람을 살리는 기사회생(起死回生)의 식물로 등장한다. ‘바리데기’기 부모를 살린 영약인 개안초(開眼草, 눈을 밝게 해주는 풀)는 무장승(바리데기공주 신화에 나오는 삼신산의 약수를 지키는 괴물)과 함께 살면서 매일 나무하러 가서 베던 풀로, 죽은 사람도 살리는 재생의 약은 결국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문학적 측면
풀 중에서도 봄에 돋는 풀은 붉은 꽃과 함께 생명의 약동을 상징한다. 녹음방초(綠陰芳草)라는 말은 풀의 생명력에 대한 직접적인 감흥을 그대로 드러낸 말이다. 풀의 상징성은 변하기 쉽고 시들어가는 것으로 풀은 인간무상, 인간사의 덧없음을 비유하기도 한다.
‘죽었다가 봄만 오면 또 나는 풀, 심은 이 없이 나는 풀, 너는 조물주의 명함이 아니냐. 푸른 너를 먹고 소는 흰 젖을 내고 사람은 붉은 피가 뛰고, 소리도 없는 너를 먹고 꾀꼬리는 노래하고 사자는 부르짖고 물에서나 마른 모래밭에서 다름없는 향기를 너는 뿜어내니 너는 신비의 못이 아니냐’ 함석헌(1901년 3월~1989년 2월)의 ‘할 말이 있다’에서 보는 바와 같이 풀에는 신비함이 있다.
▽ 종교적 측면
① 유교(儒敎)
풀은 바람 부는 쪽으로 흔들리는데 이러한 모양은 통치자의 뜻을 따르는 백성을 상징한다. 유 교에서는 백성이 풀처럼 불어나는 것으로도 보았다.
② 불교(佛敎)
서산대사는 선(禪)의 특징을 ‘생각을 끊고 반연(攀緣)을 쉬고 일없이 우두커니 앉았더니, 봄이 오며 풀이 저절로 푸르구나’하였다. 즉 세월이 가나오나 알 바가 아니지만 봄이 되면 풀빛이 푸른 것은 특별히 한 생각이 일어날 때 돌이켜 살피게 하려는 계기로 본 것은 바로 성찰의 세계다. 또 만공화상은 온갖 풀(百草)이 ‘부처의 어미(佛母)’라고 하였다.
● 조상들은 풀이름을 어떻게 지었는가?
잎이 삿갓처럼 생겼다고 삿갓나물이라 하고, 애기똥풀은 젖먹이 아기의 똥 같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달개비 풀은 꽃잎이 닭 볏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였으며. 씀바귀는 맛이 쓰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고, 봄날 들판에서 뜯어 먹던 시금치는 그 맛이 시다고 그런 이름을 붙였다.
질경이풀은 생명력이 모질고 끈질기다는 느낌을 준다. 엉겅퀴, 댕댕이덩굴풀 등은 이름을 말할 때 울리는 느낌만으로도 그 풀의 모양이 눈앞에 나타난다. 미나리아재비, 도깨비바늘, 쥐오줌풀…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풀이름마다 들어 있다. 이 모든 이름들은 자연 속에서 일하며 살아가던 조상들이 지은 것이다. 이름들은 자연스럽고 아름답고 재미있고, 그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윤석주의 ‘재미있는 우리 풀이름’ 일부 인용)
●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풀
하찮고 별 볼일 없고 쓸모없는 풀이라고 하지만 허리를 굽히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독특한 이름을 갖고 있는 것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웃음보가 터지고 말하기에 거북하고 황당한 이름들도 있다.
․ 강아지풀, 꽃과 이삭이 강아지 꼬리처럼 생겨서
․ 개불알풀, 꽃 모양이 개의 불알같이 생겨서
․ 금강아지풀, 꽃과 이삭이 금같이 노랗고 강아지 꼬리처럼 생겨서
․ 깽깽이풀, 만지기만 해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소녀의 모습을 닮았다하여
․ 꿀풀, 향기 짙은 꽃 속에 많은 꿀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 노루발풀, 하얀 눈 위에 찍은 노루의 발자국 같다고 해서
․ 노루오줌풀, 잎을 만지면 노루오줌 냄새가 나서
․ 누린내풀, 꽃냄새가 여자의 성기에서 나는 누린내와 비슷하다고 해서
․ 며느리밑씻개풀, 일은 안하고 화장실을 자주 드나드는 며느리가 미워한 시어머니가 화장지 대 신 사용하게 했다는 데서.
․ 며느리밥풀꽃, 가난한 시절 배가 고파 밥을 훔쳐 먹던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아 죽은 후,입술에 밥풀 두 개가 붙은 모양으로 꽃이 피어 생긴 이름
․ 사위질빵 풀, 사위에게 힘든 일을 시키기 미안 해 짐을 어깨에 멜 수 있는 질빵 끈을 이 나무의 줄기로 엮어주었다고 해서
․ 산꼬리풀, 꽃이 야생동물의 꼬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 소불알풀, 뿌리가 소의 불알처럼 생겼다고 하여
․ 쇠뜨기풀, 소가 잘 뜯어 먹어서
․쇠무릎풀, 마디가 소의 무릎 같이 생겨서
․애기똥풀, 줄기를 자르면 노란 액이 나온다고 해서
․ 오이풀, 줄기를 자르거나 잎을 비비면 오이 냄새가 난다고
․ 이질풀, 심한 설사라도 이 풀을 먹으면 즉시 멎는다고 해서
․자라풀, 잎을 뒤집어보면 자라의 등처럼 보인다고 해서
․ 족도리풀, 꽃의 모습이 시집갈 때 머리에 쓰는 족두리를 닮았다고 해서
․ 톱풀, 잎이 톱날처럼 생겼다고 해서
․ 피뿌리풀, 뿌리를 뽑으면 뿌리 액이 빨갛다고 해서
․ 할미밀빵 풀, 힘 없는 할미에게 지는 끈으로 주었다고 해서
그 외에도 논에서 자라는 ‘피’는 농민들 피를 말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참새귀리ㆍ까치수영ㆍ능수참새그령ㆍ제비꿀ㆍ꿩의 밥 등은 새(鳥)의 이름을 빌린 경우도 있고 산여뀌ㆍ갯아지풀ㆍ들묵새ㆍ논뚝외풀 처럼 발생하는 곳에 따라 지어진 것도 있다.
유럽쥐손이ㆍ미국가막사리ㆍ서양벌노랑이와 같은 것은 국가에 따라 지어진 이름이다. 송이풀과 같다고 해서 나도송이풀, 냉이와 비슷하다고 해서 나도냉이라고 부르는 풀도 있다. 독성이 강해 인체에 해로운 나도독미나리ㆍ독보리ㆍ 독미나리 등과 같이 ‘독’이 붙기도 한다.
계절과 시간의 의미를 담은 이름도 있다. 봄맞이꽃ㆍ봄망초ㆍ가을강아지풀ㆍ겨울뚝새풀 등은 자라는 계절을 뜻하는 접두어를 달고 있다. 달이 있을 때 핀다고 해서 ‘달맞이꽃’, 한여름 더위를 먹었을 때 효과가 있다고 해서 ‘더위지기’라는 풀도 있다.
우리나라 잡초이름에는 욕설이나 신체ㆍ사물을 비하하는 내용이 포함된 경우도 많고 생김새를 비유해 이름을 붙인 것도 많다. 이름마다 이유와 유래가 있어 그 배경을 알게 되면 선조의 지혜에 감탄하게 된다.
풀도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해낼 때가 있다. 여름 장마에 빗물에 흙이 씻겨 내려 갈 때 튼실하게 뿌리를 내린 풀이 흙의 무너짐을 예방하기도 하고 뚝새풀과 같이 자생력이 왕성한 풀은 잡초들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도 한다.
개망초는 향기가 좋아 액을 추출해 방향제에 사용하기도 한다. 시험적이지만 일부 풀은 다른 잡초를 죽일 수 있는 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이를 실용화하려는 작업도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도움말,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 풀 이름 짓기
풀의 기본 구조는 잎과 줄기와 뿌리의 특징이 이름을 짓는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여기에 꽃과 열매의 특징이 더해진다. 잎, 줄기, 뿌리, 꽃, 열매의 특별한 점은 풀이름을 추리해 내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렇다고 단서가 바로 이름이 되는 건 아니다.
다섯 가지의 틀 위에 각각의 모양과 빛깔과 냄새와 맛이 조화를 이루어 낼 때 비로소 풀이름이 생겨난다. 그런가하면 모양을 더 세분하여 길이, 굵기, 크기, 넓이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자 이름이 붙은 풀들과는 달리 우리나라 고유의 풀이름은 주로 감각기관을 이용하여 이름 붙였음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 신체 부위와 관계로 붙여진 이름 - 피나물, 애기똥풀
․ 가족관계로 붙여진 이름 -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밥풀, 사위질빵
․ 동물의 이름과 관계로 붙여진 이름 - 개불알풀, 쇠뜨기풀, 토끼풀, 닭의장풀
․ 인공물과 관계로 붙여진 이름 - 족두리풀
․ 사물의 모양이나 성질과 관계로 붙여진 이름 - 오이풀, 이질풀
누가 처음에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하나하나의 이름을 보면 토속적이고 정감 있는 이름들이다. 누구나 부르기 쉽고, 한번 들으면 ‘아하, 그거!’하고 그 이름을 쉽게 기억할 수 있고 친근하게 다음을 고려한다. ► 누구나 알 수 있게 ► 쉽게 부를 수 있게 ► 가까이 있는 사물에 붙여 ► 살아가는 일과 밀접히 관련되게
풀이름은 많이 배운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 아니다. 이 땅에 뿌리박고 살아가던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이웃집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부르던 이름들이다. 아침저녁으로 보고, 뽑고 김을 매며 듣던 풀이름은 이 땅의 민초(民草)들의 작품임에 틀림없다. 어렵기 만한 식물의 학명(學名)에서 도저히 발견할 수 없는 풀이름이 향명(鄕名)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풀이름에는 한국인의 감정과 정서가 그대로 녹아있다.
■ 정성수 프로필
•서울신문으로 문단 데뷔
•저서, 시집 공든 탑. 동시집 꽃을 사랑하는 법. 장편동화 폐암 걸린 호랑이 외 다수
•수상, 세종문화상. 소월시문학대상. 아르코문학창작기금수혜 외 다수
•전) 전국책보내기본부장. 전주대학교사범대학겸임교수
•현) 전라북도교육문화회관 시수필전담강사. MRA이사. 향촌문학회장.
사단법인미래다문화발전협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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