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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룡의 역사문화이야기(23) ‘야단법석’
‘도시 빈 공토에 불교의 자리를 만드는 것’
 
김정룡 중국동포타운신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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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룡 중국동포타운신문 대표

 

 

당나라 여황 무측천은 전국 불교천하 야심을

당시 가장 잘먹힌 아이디어 야단법석이었다

 

()는 들판의 도시를 단()은 제단을 지칭

()은 불교를 뜻하고 석()은 자리를 의미

 

 

 


 

한국어 어휘 중 75%가 한자어라는 연구가 있다. 한자어라면 절대다수 그 본산지가 중국이다. 그런데 재미나는 것은 어떤 한자어는 중국에서는 일상용어로 되지 않았던데 비해 한반도에서는 일상용어로 자리매김 되어온 사례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이판사판(理判事判)’, ‘역지사지(易地思之)’ 등과 같은 사자성어는 중국에서는 일상용어가 아니다. 중국에서 40여년 살아오는 동안에 들어본 적이 없다. 야단법석도 마찬가지.

 

우리 민족은 아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비해 중국어에서는 특수한 종교언어 혹은 학술용어처럼 신비한 어휘일 뿐 일상용어가 아니다.

 

본문은 야단법석이란 어휘의 유래와 그 진화과정 및 야단법석이 어떻게 중국문학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 또 야단법석이란 어휘는 분명히 중국에서 생겨난 것인데 왜 중국에서는 일상용어가 아니고 한반도에서 일상용어로 되어왔을까? (, 뿌리)’을 밝혀보겠다.

 

야단법석의 유래

 

야단법석이란 결과부터 말하자면 불교가 중국에서 성행하는 과정에 생겨난 하나의 문화현상이었다.

 

중국에 불교가 유입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1,800년 전 후한(後漢) 말기다. 세계문명 발달사가 모두 그러했듯이 외래문명이 처음 들어올 때 토착문화와 마찰을 빚기 마련이다.

 

불교도 처음 중국에 유입될 시기에는 엄청난 저항에 부딪혔다. 그러다가 불교가 황하대륙에 발을 붙인 결정적인 문화적인 요인이 있었다.

 

중국 토착특산(土着特産)인 양대 문화 유교와 도교는 철저한 현실주의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유교와 도교에는 기독교가 말하는 천국, 불교가 말하는 내세와 같은 신앙이 없었다.

 

그래서 중국인은 신앙이 없는 민족이라 말하기도 한다. 하늘()에 대한 믿음, 옥황상제와 같은 신화가 있긴 하지만 그저 막연한 믿음일 뿐 나의 운명을 좌우하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다.

 

신앙이 없이 현실에만 안주한다면 괴로운 일, 슬픔 일, 고통스런 일에 부딪히면 위안이 안 되고 탈출이 안 된다. 쉽게 말하자면 정신적인 위안이 없는 삶은 고달프다.

 

중국인에게 없던 정신위안이 바로 내세를 신앙하는 불교였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가 중국에서 짧은 기간에 성행한 것은 아니었다.

 

AD 220년 한나라가 망하고 280년 삼국시대가 종말을 고할 때까지 불교는 지하유격대는 아니더라도 거리에 활보할 만큼 당당한 종교는 아니었다.

 

위진 남북조 시대에 현학이 머리를 쳐들기 시작해서 불교도 따라 조금씩 시장을 점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대략 유불도 삼교가 공존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그 후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특정 종교가 상위를 차지하고 다른 종교는 밀리는 현상을 보이기 마련이었다. 특히 황제가 특정 종교를 원하면 그 종교가 우위를 점하기 마련이었다.

 

▲ 당나라 여황 무측천은 불교를 좋아하다 못해 전국을 불교천하로 만들려고 가축도살금지령을 내릴 정도였다    


당나라 여황 무측천은 불교를 좋아하다 못해 전국을 불교천하로 만들려고 가축도살금지령을 내릴 정도였다. 불교계는 황제의 의지대로 천하를 불교세상으로 만들려고 골머리를 짜내게 되었는데 당시 가장 잘 먹힌 아이디어가 바로 야단법석이었다.

 

()’는 들판이고 도시 빈 공터이다. ‘()’은 제단의 의미가 있다. ‘()’은 불교를 뜻하고 ()’은 자리이다. 야단법석이란 도시 빈 공토에 불교의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즉 스님들이 수동적으로 산속의 절에서 신도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세속에 내려와 그 어려운 불경을 이야기 식으로 풀어서 갑돌이 갑순이 할 것 없이 모두 알아먹기 쉽게 강연하고 강연이 끝나면 그 자리에서 각종 오락을 하고 한바탕 떠들썩하게 논쟁도 하고 또 아낙네들이 성에 대해 맘대로 담론하는 등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 재미있어야 사람들이 모이니까.

이것이 곧 야단법석이다.

 

어른이 아래 사람에게 호통 치거나 꾸중하는 것을 야단친다고 하고 떠드는 것을 야단법석 떤다는 말이 이렇게 생겨났던 것이다.

 

야단법석과 변문(變文)’운동

 

당시 스님들이 어려운 불경을 이야기 식으로 꾸며서 강연하는 것을 학술적으로 표현하면 변문(變文)’이라고 한다.

 

당시 전국적으로 불교계가 변문운동을 일으켜 민중을 들끓게 하고 따라서 불교가 비약적으로 전파되자 유교와 도교도 따라서 변문운동을 일으켰고 각 분야에서 이 바람이 휘몰아쳤다. 이렇게 되자 중국문학예술이 큰 덕을 보게 되었다.

 

▲ 당시 스님들이 어려운 불경을 이야기 식으로 꾸며서 강연하는 것을 학술적으로 표현하면 변문(變文)이라고 한다  


우선 시()가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당나라 시가 유명한데 그 중에서도 이백, 두보, 백거이 등 시인들이 모두 야단법석의 덕을 톡톡히 본 사람들이다.

 

송나라에 이르러 ()’가 발달하였는데 역사에서는 이를 송사(宋詞)’라고 부르고 원나라에 이르러서는 희곡(戱曲)’이 발달하였는데 역사에서는 이를 원곡(元曲)’이라 부른다.

 

명나라에 이르러서는 소설이 발달하였다. 소설이란 잔소리이며 대략 1천년 동안 장터에서 이야기(잔소리)를 하고 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구전을 정리한 것이 소설이다.

 

예를 들어 나관중은 장터에서 천년 동안 내려온 이야기를 수집하고 정리해낸 것이 바로 <삼국지연의>이다. 명나라 사대 명작소설에 속하는 시내암의 <수호지>, 오승은의 <서유기>, 요요(작가 불명)<금병매> 등 모두 <삼국지>와 마찬가지로 장터 이야기들을 정리하여 묶어 낸 것들이다.

 

▲ 당나라 때 유명한 시인이었던 왕창령(王昌齡   


여기서 재미나는 이야기 하나 해보련다.

 

방송도 없고 신문도 잡지도 없는 그 옛날 문학 작품, 예를 들어 시()가 어떻게 사회에 전파되었을까? 그 결정적인 기여자들이 바로 기생집단이었다.

 

당나라 때 유명한 시인이었던 왕창령(王昌齡), 고적(高適), 왕지환(王之煥) 세 사람이 청루에 들렀다.

 

그때 마침 10여 명의 궁중악사가 네 명의 예기와 함께 주연을 열고 있었다. 네 명의 예기는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세 시인은 기생들이 부르는 노래 가운데서 누구의 노래가 가장 많은지 내기를 하기로 했다.

 

당시 세 시인의 작품은 노래로 많이 불리고 있었다. 먼저 한 예기가 왕창령의 작품을 노래했다. 왕창령이 기뻐했다. 다음의 예기는 고적의 작품을 노래하자 고적이 기뻐했다. 또 다른 예기가 왕창령의 작품을 노래하자 그는 더욱 기뻐했다.

 

▲ 당나라 때 유명한 시인이었던 고적(高適)


그러자 왕지환이 네 명의 예기 중에서 가장 용모가 뛰어난 한 명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만약 저 예기가 나의 작품을 노래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평생 당신들과 우열을 가리지 않겠소.” 과연 그 예기가 왕지환의 작품을 노래했다.

 

기생이라면 사람들이 흔히 화대나 받고 성을 제공하는 여인들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당나라 때 기방은 두 부류, 즉 청루와 홍루로 나누고 서비스도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있었다.

 

홍루의 여인들은 오늘날 홍등가 여인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던데 비해 청루의 연인들은 춤과 노래는 물론이고 거문고, 바둑, 글씨, 그림 등 문인들이 좋아하는 분야까지 두루 통달했으며 시도 잘 읊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시를 짓기도 하는 재녀들이었다.

 

그래서 당시 예기들은 고관대작과 문인들의 지음이 되기도 했다. 다르게 말하면 당시 청루는 예기들이 고관대작과 문인들과 어울려 한바탕 야단법석을 떨었던 것이다.

 

▲ 당나라 때 유명한 시인이었던 왕지환(王之煥 )   

 

 

야단법석과 원효대사

 

필자가 어릴 적 중국연변에서는 결혼식이나 환갑잔치 때 바가지를 물독에 엎어놓고 두드리며 악기로 삼았던 기억이 있다. 후에 공부하다 보니 이 관습이 원효대사에게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삼국유사 참조).

 

즉 원효대사는 중국 가는 길에 해골 물을 마시고 득도하여 중국유학을 포기하였고 신라에 돌아와 촌락을 떠돌며 바가지를 두드리는 것을 반주삼아 어려운 불경을 민중들이 쉽게 알아먹게 노래 삼아 강연을 펼쳤던 것이다.

 

그가 이르는 곳마다 그야말로 난장판이 벌어졌는데 그 모습이 바로 야단법서이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나서 우리민족 문화는 신라문화가 주축으로 흘러왔다. 예를 들어 지구촌에서 한반도 노래가사처럼 바람이란 어휘가 많은 나라는 없다.

 

신라가 모든 문화현상을 풍교로 보았던 흔적 및 화랑문화에서 풍월도를 으뜸으로 중시하고 실천했던 이유로 일상생활에서도 바람이란 낱말을 가장 말하는 민족으로 자리매김 되었던 것이다.

 

신라의 바람은 신바람이었고 신라의 신바람은 멋이고 맛이며 판이었다. 세상에서 우리민족처럼 판을 벌리기 좋아하는 민족은 없다. 우리민족의 판의 문화가 곧 야단법석이다.

 

한편 원효대사에게서 유래된 야단법석은 우리 민족 일상용어로 굳어질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해왔던 것이다. 필자는 대한민국 가수 중에서 나훈아가 원효대사의 야단법석을 재현하고 있다고 본다.

 

물론 종교적인 요소를 떠나 나훈아는 콘서트만 열면 다른 가수들처럼(특히 조용필처럼) 마이크 잡고 딱딱하게 노래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무대는 항상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여 각종 놀이를 자유롭게 하는 모습이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김정룡 프로필

-)중국동포타운신문 대표

-장춘대학교 일본어학부 전공

-연변제1교 일본어 교사 역임

-著書) 김정룡의 역사문화이야기

<멋 맛 판> 2015

-著書) 재한조선족문제연구집

<천국의 그늘> 2015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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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6/02 [09:51]  최종편집: ⓒ 투데이리뷰 & 영광뉴스.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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