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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슬에 진동하는 듯, 서늘한 바람 몰아”
(POET VIEW) 林 森 산에는 달 뜨고
 
림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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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bay.com 









 산에는 달 뜨고 

 

 

 

   

 林  森

 

 

 

필경 봄이었고 밤이었지,

숲은 하냥 서걱이다가도

고사목 감싸 돌아 그윽이

어둠 결에 스쳐가고

 

바알갛게 탈색된 하늘엔

누군가의 그림자,

스러진 노을인 양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

흡사 비늘구름처럼 하리망당

순식간 흩어지드라

 

교교한 별무리

산 틈새 얼굴 들이밀면

여린 이파리

밤이슬에 진동하는 듯

서늘한 바람 몰아

이제 막 달 뜬 산허리

각진 어딘가 걸터앉을 때 쯤,

그 쯤에

 

그렇지! 그 새 달이 떠오른 게야

 

숲은 마치

고요 끌어안은 요람같지만

어둠 밀치고 하늘로 솟아

세상 아픔과 슬픔

죄다 씻어낼 모양

 

싱그런 풀잎

바람 타는 봄밤이거늘

치켜뜬 눈 안으로

달빛 쏘아져 들어오는데

 

실낱같은 강줄기는

북으로 북으로 흐르다가

숲에 달빛 내려쌓이는

산자락 여울목에

온 정력 다 쏟아붓고는

질펀하게 잠이 든다

 

 

 

詩作 note 

가장 최근에 지은 시다. 은유적 표현 속에 현실적인 감각이 내재 되어 있다는 느낌을 풍기고 싶었다. 요란하고 시끄럽게 돌아가고 있는 세상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대자연의 위상과 품격을 그리려고 한 시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가 힘겨운 작금의 사태에 답답하고 갑갑한 심경이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지나갈 환란이고 고통이라는 막연한 소망에, 꿈결인 양 흐르는 시상을 맡기면서 필자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봄이고, 밤이다, 산에는 달 뜨고, 그렇게 계절은 무르익고 있다. 우리네 인간들의 불편한 심사야 하늘을 찌를 듯 하지만, 무심한 자연은 순리를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진리에 역행하지 말라는 진중한 충고를 넌지시 건넨다. 누군가가 얼마만큼 알아듣는지는 관심사가 아니다. 어차피 따를 인간들만 챙기고 아끼며 그렇게 자연은 제 갈 길을 갈 요량이다. 뒤처지고 추락하는 인간들의 생사고락은 흐르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밟고 지나갈 거라고, 어쩌면 야속하고 매서운 충고로 자연은 오늘도 우리 앞에서 당당할 따름이다.

 

우리나라는 모든 국민의 결사항쟁의 각오와 일치단결한 모범적 행동에 힘입어 그 여파가 주춤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는 꺾일 줄 모르는 코로나19’의 위세가 바야흐로 인류를 위기로 몰고 있다. 이웃 나라 중국에서 시작한 변괴는 유럽과 미국 등을 돌고 돌아 지금은 또 다른 이웃 나라 일본에서 특히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며 창궐하고 있다. 보여지는 조짐이 심상치 않다.

 

25일 일본 공영방송 ‘NHK’에 따르면 일본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총 13,575명으로 늘었다. 국내 감염자 12,863, 지난 2요코하마(橫兵)에 입항했던 국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탑승자는 712명이다. 확진자 현황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도쿄도3,733명으로 가장 많고, ‘오사카(大阪)’ 1,446, ‘가나가와(神奈川)’ 907, ‘지바(千葉)’ 789, ‘사이타마(埼玉)’ 777명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일본의 하루 신규 확진자는 지난 19~21300명대로 떨어졌다가 22일부터 사흘 연속 400명대를 기록했다. 일본에서는 주말엔 각 지역의 코로나19 검사건수가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에 일일 신규 확진자 수 또한 주초엔 감소했다가 주말이 다가올수록 다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어차피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현상이 표면으로 드러나고 있는 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거센 확산 소식에 소름이 돋는다.

 

어떤 화면을 보니 미국의 텅 빈 고등학교 교정, 조기(弔旗)가 걸려있다. 미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망자는 벌써 5만명을 돌파했다. 24일 오전 현재 통계 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미국 내 누적 사망자는 5243명으로 집계됐다. 확진자는 886,709명으로 세계 272만명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CNN’미국 내 코로나19 확산세가 정점에 있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수만명은 더 숨질 수 있다.”베트남전쟁 희생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CNN에 따르면 미국은 10년 가까이 지속된 베트남전쟁에서 58,000여명의 미군 희생자를 냈었다.

 

도처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일시에 죽고 있다. 그런데 감각이 조금 색다른 트럼프는 백악관 브리핑에서 매일 떠들고 있다. 한 편으로는 선동하는 트윗을 날린다. 총을 들고 주청사 앞으로 사람들은 몰려 나오고 구호를 외치면서 도로를 막는다. “도시 잠금을 해제하라.” 작금의 상황이 이럴진대 한숨 돌렸다고는 하나 우리 한국 사회도 경계를 소홀히 할 때가 아니다. 언제 어디서 또 다시 태풍처럼 극악하고 야멸찬 바이러스 기습을 당할지 모른다.

 

녹색평론가 김종철선생은 한겨레신문칼럼 코로나 환란, 기로에 선 문명이란 제목의 글에서 코로나 사태는 인간의 역사에서 전혀 낯선 종류의 경험이 아니다. 고대, 중세의 역병과 다른 게 있다면 감염 속도가 대단히 빠르고, 그 범위가 전 지구적이라는 점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는 자본주의의 폭주, 과잉 산업 발전과 소비주의의 소산이다. 오로지 이윤과 성장을 추구하는 데 혈안이 되어 무절제한 탐욕의 정신이 온 세상을 압도하는 바람에 야생생물들의 서식지를 포함한 생태계는 대대적으로 파괴되었고, 거기에 자본, 물자, 사람의 대량 이동을 끊임없이 부추기는 신자유주의적 자유무역 논리까지 합세하여 지금과 같은 파국적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라고 했다.

 

또한 현실이 이런데도 역병이 창궐할 때마다 백신과 치료제를 찾느라고 허둥댈 것인가? 물론 당장은 기술적 해법을 찾아야 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우리 모두의 정신적 육체적 면역력을 증강하는 방향이라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의 생태계 훼손을 막고, 맑은 대기와 물, 건강한 먹을거리를 위한 토양의 보존과 생태적 농법,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 소박한 삶을 적극 껴안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를 구제하는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도, 마스크도, 손씻기도 아니다. , 장기적인 고립생활이 면역력의 약화를 초래한다는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공생의 윤리를 부정하는,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면역력을 체계적으로 파괴하는 탐욕이라는 바이러스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 무엇을 일상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막연한 것 말고 구체적으로 말이다. 당장 내 주위에서 나부터 말이다. 얼핏 따져봐도 너무 할 일이 많다. 먼저 쓰레기부터 가급적 줄이자. 매일 나오는 쓰레기를 줄이고 일주일 동안 반을 줄여보자, 그리고 시야를 조금 넓혀 핵발전을 반대하는 이유에 관심을 조금이라도 가져보자,

 

돌아보면 인간과 생태계를 한 순간에 파괴하는 핵발전소가 이 작은 나라에 너무도 많다. 미국이나 유럽, 특히 독일은 이미 2022년까지 원자력발전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2038년까지 석탄발전도 완전 중단을 선언했다. 한국은 핵발전을 안 하고 못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언론에서 호도하고 있다. 그러면서 핵발전 광고를 기사처럼 꾸며 돈을 벌고 있다. 한국은 석탄발전소도 계속 짓겠다고 한다. 이러면 안 되는 거다. 지금은 더 이상 망설일 때가 아니다. 빨리 대체에너지의 개발에 지혜를 모으자.

 

돈이 된다고 멀쩡한 산 등선을 깎고, 밭에다가 태양광 반사판을 막 세우는 무지한 짓거리가 아니고, 진짜로 진지하게 가능한 방법들에 대하여 한국 사회가 지혜를 모아보자. 이번 유럽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서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가까운 독일이 사망률이 가장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1/4 수준이다. 그 이유는 사회 공공의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도 공공의 요소를 덜 파괴했고, 사회를 구축하는 시스템에서 다른 유럽의 나라들에 비해 월등한 공공성이 작동하고 있다.

 

오피니언 평론가 김상수선생은 말한다. “이번 바이러스 감염 사태 대응을 보면서 한국 사회는 훨씬 더 공공성을 확대하고 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국가 사회로 확인되고 있다. 시민의 자발성은 어느 나라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정부의 정책 방향이 옳게 정해지고 신뢰가 있다면 국민 일반 시민들도 나선다. 국회도 바꿨다. 앞으로 국회가 어떻게 작동될까는 미지수지만 최소한 필요한 입법까지 막무가내 틀어 막는 식의 국회는 아닐 것으로 기대한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한국 사회도 변화를 일으킬 때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다. 진정한 변화는 눈에 보여지는 정책이나 제도로 나타나는 건 아니다. 일시적인 방편이나 임시로 틀어막는 행정과 법규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근본적인 우리들의 마음가짐이다. 진심으로 변화를 원하는 간절함, 세상을 더 낫게 변모시키고, 사람이 살 만한 누리로 만드는 데 동참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가 밑받침된 실천이어야 미래를 향한 변화의 물결은 샘처럼 솟아날 수 있는 것이다.

 

오래 전 시외버스 안에서 벌어진 일로 그것은 불과 10여 분 안팎의 일이었다. 만원버스도 아니었고 정류장마다 멈추는 시간이 그리 철저히 지켜지던 때도 아니었다. 버스 기사가 시동을 걸고 막 출발하려는데 승객 중 한 사람이 버스를 타려는 사람을 발견하곤 외쳤다. “저기 어떤 할머니가 오십니다!” 버스 기사가 바라보니 제법 떨어진 거리에서 한 할머니가 무언가 머리에 인 채 버스를 향해 종종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서 출발합시다!” “언제까지 기다릴 거요?” 버스에 타고 있던 몇몇 승객이 바쁘다면서 서둘러 떠나기를 재촉했다. 그러자 버스 기사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우리 어머니가 오십니다. 조금 기다렸다가 같이 가시지요!” 승객들은 할 말을 잃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필이면 기사의 어머니라니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때 창가에 앉았던 한 청년이 벌떡 일어나 버스에서 내려 할머니를 향해 달려갔다.

 

승객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버스 밖으로 모아졌다. 머리 위의 짐을 받아든 청년은 할머니의 손을 부축하여 잰걸음으로 버스로 돌아왔다. 할머니와 청년이 버스에 오르는 순간 승객 중 누군가가 박수를 치자 마치 전염된 듯 너나없이 박수가 이어졌다. 물론 그 할머니는 버스 기사의 어머니도, 청년의 어머니도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가 되고 회한으로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돌아가신 부모님께 특히, 어머니께 효도를 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세상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우리의 자화상을 진솔하게 그려보는 자세를 갖는다면, 그것이 바로 변화를 위한 첫 걸음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흔히 왜 사느냐고 인생의 의미를 묻는다. 그러나 삶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인생은 의미를 갖고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사는 거다.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고 들지 말자. 그러면 또 하나의 굴레만 늘게 된다. 우리 인생은 길 가에 피어 있는 한 포기 풀꽃이다. 길 가에 풀처럼 그냥 살면 된다. “나는 특별한 존재다. 나는 특별해야 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자신의 하루 하루 삶에 만족 못하고, 늘 초조하고 불안하고 후회하는 것이다.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면 특별한 존재가 되고, 특별한 존재라고 잘못 알고 있으면 어리석은 인생이 되는 거다. 내가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길 가에 피어 있는 한 포기 풀꽃같은 존재라는 것을 자각한다면 인생이 그대로 자유롭다. 내가 남보다 잘 나고 싶고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인생이 피곤한 거다. 진정으로 자유를 원하고 행복을 바란다면 마음을 가볍게 해야 한다. 그러면 스스로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삶이 별 게 아닌 줄 알면 도리어 삶이 위대해지는 것이다.

 

어떤 노인이 소일거리를 겸해 벌을 쳐서 꿀을 땄다. 꿀이 아주 좋기에 동네 모든 사람들에게 빈 그릇을 가져와 꿀을 받아가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조그마한 병을 가져와서 꿀을 받아 갔다. 어떤 사람은 바가지를 갖고 와서 받아 갔고, 어떤 사람은 커다란 기름통에 받아 갔다. 그런데 그 후에 불평하는 말들이 나왔다. 공평하게 나눠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노인은 말했다. “나는 가져온 그릇대로 가득 채워 주었을 뿐이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성품, 즉 그릇의 크기다. 내가 어떤 그릇이 되느냐에 따라 담기는 축복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그릇을 이야기할 때 큰 그릇과 작은 그릇, 깨끗한 그릇과 더러운 그릇으로 구분 짓는다. 큰 그릇은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태연하게 잘 대처한다. 작은 그릇은 작은 일에도 잘 흥분해 일을 망치는 사람들이다. 결국 큰 그릇은 범사가 형통케 되지만 작은 그릇은 빈()하게 된다.

 

깨끗한 그릇은 악한 일에 이익이 있다 해도 손을 잡지 않는다. 하지만 더러운 그릇은 잘못을 알면서도 손을 잡다가 결국 버림당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 그릇에 독이 담긴 줄도 모르고 꿀이 쓰다고 불평까지 한다. 매사에 불평하지 말고 먼저 내 그릇부터 점검해볼 일이다. 마음에 오래 담아 두지 말자. 흐르는 것은 그냥 흘러가게 놓아두자. 바람도 담아두면 생각을 흔들 때가 있고, 햇살도 담아두면 심장을 새까맣게 태울 때가 있다.

 

아무리 영롱한 이슬도 마음에 담으면 눈물이 되고, 아무리 예쁜 사랑도 깊이 가지면 상처가 되니, 물고기처럼 헤엄쳐가게 놓아두자. 어차피 삶이란 그런 거다. 삶이란 그렇게 흐르게 그냥 두면 되는 거다. 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조급해 할 일도 아니고, 지나가버린 시간에 연연하며 후회와 한탄으로 낭비할 일도 아니다. 시간은 시간이니 그냥 시간 가는대로 놓아두자. 흐르는 시간 시간 마다의 의미만 잃지 않으면 되는 거다.

 

인생의 스승은 책인 줄 알았는데, 살아갈수록 그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언제나 나를 가르치는 것은 말없이 흘러가는 시간이었다. 풀리지 않는 일에 대한 정답도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찾을 수 있었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랑의 메시지도 거짓 없는 시간 속에서 찾았다. 시간은 언제나 나에게 스승이었다. 어제의 시간은 오늘의 스승이고, 오늘의 시간은 내일의 스승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간이 오늘의 내 삶을 이끌어주고, 내일의 삶을 예비해주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만 잊지 말아야 한다.

 

가장 낭비하는 시간은 방황을 하는 시간이고, 가장 교만한 시간은 남을 깔보는 시간이며, 가장 통쾌한 시간은 승리를 하는 시간이다. 가장 지루한 시간은 기다리는 시간이고, 가장 서운한 시간은 이별하는 시간이며, 가장 비굴한 시간은 자기 변명을 늘어놓는 시간이다. 가장 가치 있는 시간은 최선을 다한 시간이고, 가장 기분 나쁜 시간은 모욕을 당한 시간이며, 가장 기분 좋은 시간은 성취를 한 시간이다. 가장 달콤한 시간은 일한 뒤 쉬는 시간이고, 가장 즐거운 시간은 노래 부르는 시간이며,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사랑하는 시간이다. 필자는 언제부턴가 흐르는 시간을 통해 삶의 답을 찾아가고 있었던 거다.

 

오늘은 어제 사용한 말의 결실이고, 오늘 사용한 말의 열매라고 한다. 내가 한 말의 95%가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말은 뇌세포를 변화시킨다. 그렇기에 말버릇을 고치면 운명도 변한다.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일듯, 말의 파장이 운명을 결정짓는다. 아침의 첫 마디는 참으로 중요하다. 밝고 신나는 말로 하루를 열어보도록 하자. 말에는 각인효과(刻印效果)’가 있다. 같은 말을 반복하면 그대로 된다. 자나 깨나 감사합니다를 반복한 말기암 환자가 한 순간 암세포가 사라졌다고 한다.

 

또한, 밝은 음색(音色)을 만들어보자. 소리 색깔이 변하면 운세도 변한다. 미소짓는 표정으로 바꿔보자. 그리고는 정성을 심어 말하자. 정성스러운 말은 소망 성취의 밑바탕이다. 반대로 퉁명스러운 말투는 들어온 복도 깨뜨린다. 그러므로 발성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자. 불평 불만만 쏟으면, 안 되는 일만 연속된다. 투덜대는 습관은 악성 바이러스다. 더불어, 열심히 경청하면 마음의 소리까지 들린다. 상대의 말에 집중하자. 시비에 끼어들지 말고 자기 길로 가자. 자칫하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된다.

 

그리고 말에는 견인력(牽引力)이 있다. 없는 말을 퍼뜨리면 재앙이 따른다. 부정적인 언어는 불운을 초래한다. 긍정적인 언어로 복을 짓자. 때로는 침묵하자. 침묵은 최상의 언어다. 어떤 때는 눈으로 말하도록 해보자. 눈은 입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가능하면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미안합니다를 상용어로 사용하자. 대화에도 질서가 있다. ‘끼어들기, 가로채기, 앞지르기‘3대 재앙이다. 잘못은 용서를 빌고, 남이 용서를 빌면 용서하자. 그래야 사랑과 평화가 깃든다.

 

좋은 책은 소리내서 읽고 또 읽자. 곧 놀라운 변화가 나타난다. 목소리를 낮추자. 조용한 소리가 오히려 위력이 있다. 그렇게 행복하길 바라자. 머지 않아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이 깃드는 변화를 실감하게 될 거다. 온 세상에 사랑의 향기가 넘쳐나는 변화를 만끽하게 될 거다. 이제부터 세상은 변화한다. 내일의 세상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변화된 나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주역은 필시 우리들이 될 거다. 지금은 봄이고 밤이다. 필경 산에는 달 뜨고, 우리들의 마음에도 밝고 큰 달이 휘영청 떠오를 거다.

 

 

 

 

 

 

 


원본 기사 보기: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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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4/28 [23:32]  최종편집: ⓒ 투데이리뷰 & 영광뉴스.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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