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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더 가기 전에 마스크를 벗는 날”
<이춘명 칼럼> ‘경험해보지 않은 일’
 
이춘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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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있어도 마음껏 살 수 없는 기간이었다.

 

▲  이춘명 칼럼니스트  

427일부터 13매 구매 할 수 있었다. 현금이 아니라도 눈치 보지 않고 대리 구매도 가능하게 되었다. 매주 1번 삼천 원을 들고 줄을 길게 섰다. 마스크 5부제 전에는 인터넷을 검색하여 더 싸고 더 많이 파는 곳을 뒤졌다.

 

약국마다 에탄올 입하. 손 소독제 구매 가능이라는 쪽지를 문에 다시 붙이고 있다. 내가 가지 않아도 내 분량은 보장되어 있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다. 토요일, 선거일, 석가 탄신일에 모두 가능이라는 말이 느긋하게 해준다.

 

12매 주 1회의 새로운 규칙에 적응하고 순응하며 지냈다. 기다리던 줄이 조금씩 짧아지고 빨라졌다. 4월이 지나가면서 오전 830부터 살 수 있다. 알코올로 소독하면서 두 장으로 일주일을 견디었다. 이제 3장으로 나누어 쓰게 되었다. 확진자는 110명으로 안정적인 선에 잡혀 있다. 전염병으로 참고 견딘 두 달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었다.

 

살 수 없으면 어쩌지 라는 불안감으로 이 약국 저 약국 찾아 다녔다. 다행히 겨울철 미세 먼지용으로 준비해 두었던 물량이 남아있어 사용을 하였다. 장당 팔 천원 할 때에 요긴하게 썼다. 알코올 1병에 2만원이라고 소문으로 떠돌 때 남아있는 것으로 아슬아슬 잘 버티었다.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돈이 있어도 마음껏 살 수 없는 기간이었다. 아침마다 검색하고 저녁에 주문해 놓고 하염없이 기다렸다. 도착 정보나 파손에 관한 서비스는소비자와 구매자의 권리가 아니었다. 한 달 후에 와도 보내주는 고마움에 감사했던 봄이었다. 그렇게 보낸 봄이 이제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 너무나도 아까운 봄이었다.

 

혹시 하면서 완전한 자유를 기다리고 있다. 집에서 보내는 24시간은 진행 중이다. 양말도 꿰매신지 않던 손가락으로 면 마스크를 만들고 보낸 봄을 잊지 못할 듯하다. 외출 자제로 동네 밖을 나가지 못하는 동안에 큰길 까지는 나가야만 했다.

 

면 마스크 만들기는 계속하고 있다.

 

당장 쓰고 나갈 마스크가없어 마스크 본을 떠서 만들기 시작했다. 출퇴근하는 가족이나 면역력이 약한 가족은 아껴둔 마스크를 주었다. 집에서 일을 할 때나 현관을 왔다 갔다 할 때는 면 마스크를 사용했다.

 

자르고 꿰매고 고리를 연결하여서 입을 막는 용도로 만들어 쓰고 있다. 주민 센터에서 가구당 1개 무료 지급한 면 마스크를 보고 만들기의 발단이 되었다. 쓰지 않던 바늘과 실을 찾아 돋보기를 꺼내 만들고 살균 소독해서 수시로 쓰고 세탁해서 또 쓰는 반복이 점점 증가했다.

 

면소재가 있으면 꼼꼼하게 바느질을 하는 일은 가족에게도 보이지 않던 생소한 모습이었다. 주부라도 바느질을 잘 하지 않았다. 공적 마스크로 1인당 2개씩 보장이 시작되었을 때에도 계속 만들었다. 지금 시간과 물량과 구매가 완화 되었어도 면 마스크 만들기는 계속하고 있다.

 

예비 물량이고 간편하게 잠깐의 외출에 사용하려고 자꾸 만든다. 아직은 교통수단으로 멀리 나가지 않고 있다. 더 강력한 사회적 거리가 아니라도 최소한의 볼 일만 보고 있다. 동네 안에서는 면 마스크를 사용해도 괜찮았다. 종교 집회가 자율이 되어도 영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당당히 약국에 갈 때도 사용한다. 내 분량이 보장되어 기다리고 있다.

 

345백 원 가족 것까지 현금이 아니라도 살 수 있다. 편하게 살 수 있다. 골목에 늘어나는 주민들의 얼굴을 많이 보게 되었다. 인근 공원에서 스치는 이웃들의 얼굴이 차츰 밝아지고 있다. 밝아지는 5월이다. 문을 열고 잠시 멈추었던 자유를 원래대로 꺼낼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고 살던 두 달이었다. 봄의 패션은 흰 마스크 족이었다. 동물의 털로 만든고급 외투가 아니었다. 가벼운 방수 방한복의 얇은 패딩도 아니었다. 남녀노소 빈부격차 없이 모두의 얼굴을 반을 가린 하얀색이었다.

 

빈부귀천, 상하수직, 관계, 명예에 평등한 구매 자격으로 다툼의 없는 봄이었다. 사장님도 인턴 사원도 고용주도 집주인도 늙은이도 자기 몫의 권리를 같은 가격으로 당연히 살 수 있는 기다림은 자유가 좁혀지던 기간에 유일한 자유였다. 내 몫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희망이었다. 내 것은 남아있다는 희망이었다.

 

목적으로 사용했던 마스크는 이제 필수품이 되고 의무 착용이 되었다. 입장 불가라는 말이 붙은마스크라는 말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뇌리에 축적 되었다. 핸드폰을 놓고 나가더라도 마스크를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었던 시대를 겪었다.

 

두 달의 경험으로 마스크에 대한 애정과 필요성으로 면 마스크를 계속 만들고 있다. 공적 마스크가 부족하지는 않다. 외출을 못하니 몇 장씩 밀려 저축되고 있다. 그래도 마스크를 만드는 일이 습관이 될 정도로 삶의 모습이 바뀌었다.

 

▲ 사장님도 인턴 사원도 고용주도 집주인도 늙은이도 자기 몫의 권리를 같은 가격으로 당연히 살 수 있는 기다림은 자유가 좁혀지던 기간에 유일한 자유였다    

 

이런 봄이 다시는 재현되지 않기를

 

마스크를 쓰는 기간 동안 자주 가는 곳이 약국이 되었다. 친해질 사람이 약국에서 만나는 얼굴로 바뀌었다. 만나는 얼굴도 약국 앞에서였다. 닫힌 상점들 사이 어둔 골목에 환하고 북적대는 곳은 약국이 되었다. 밤을 지키는 편의점 다음으로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곳이 약국이 되었다.

 

사실 동네 약국은 잘 가지 않았다. 동네에 약국이 있었구나! 이런 골목에도 있었구나! 그동안 무심했구나!많은 반성을 하였다. 다시 동네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정답게 바뀌었다. 화장도 하지않고 입술도 칠하지 않고 마스크로 전염병을 막는 시간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사람을 피하고 사람이 두려운 기간 동안 다행히 건강하게 지켜준 마스크 한 장 한 장마다 고마움이 크다

 

살다보니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바뀌는 것을 실감했다. 최소 석 달의 기간이 지나야 안정되는 동안 모든 이웃들이 한마음으로 참고 잘 지내고 있다. 질서를 지키고 성숙한 대응이 보람되었다. 5월이 되면 골목에 채워질 사람들과 활짝 문이 열릴 상점들을 미리 그림을 그려본다. 그런 소망으로 서로의 인내를 위로하면서 남아있는 시간을 착실히 지키고 있다.

 

마스크를 만들면서 남아있는 봄을 기다린다. 봄이 더 가기 전에 마스크를 벗는 날을 기다린다.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나가면서 마스크가 필요 없는 봄을 기다린다. 문이 없는 문 안의 봄에서 마스크를 사는 만큼 늘어난 것은 포장 용기이다. 식당 내 식사 금지와 사회적 거리로 배달음식이 늘고 포장용 음식이 세끼 밥 대신으로 이용되었다. 썩지 않는 포장 용기가 산이 되는 사이 가족들은 더 가까워졌다. 집집마다 사람 소리가 나고 불이 켜지고 음식 냄새가 밖으로 나왔다.

 

두 달 동안 집과 가정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타인이 방문하고 가면 현관에 알코올을 뿌리는 현상이 보이고 현관벨 소리를 듣고 선뜻 문을 열어 주지 않는 속도로 바뀌었다. 마스크 착용을하였나, 안하였나부터 확인하고 아는 얼굴인가 아닌가를 보게 변하였다.

 

인생 그림에서 마스크를 쓴 얼굴의 초상화가 덧붙여진다. 전에도 없던 일이다. 나중에도 없었으면 하는 일이다. 눈만 내놓고 다닌 두 달 동안 귀가 당겨 벌겋게 되어도 참았던 일도 지나간다. 흰 마스크 족의 하얀 사람들과 함께 견딘 두 달이었다.

 

봄꽃이 피어도 눈으로 그 향기를 더듬었던 봄이었다. 나가지 못하는 방에서 한 개 두 개 면 마스크를 만들던 봄이었다. 6만원 정도의 마스크 구입비는 식비와 문화비에서 빼야만 하는 봄이었다. 쓰지 않아도 되는 소비를 꼭 해야만 하던 봄이었다. 다시 돌아올 봄에는 이런 고통이 없었으면 하는 기도를 할 뿐이다.

 

 


원본 기사 보기:해피!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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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4/30 [23:57]  최종편집: ⓒ 투데이리뷰 & 영광뉴스.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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