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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曜 隨筆> 박성실 ‘검은 꽃 질 때까지’
 
수필가 박성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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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박성실     

 

 

온 세계를 멈춰 서게 만든 팬데믹 뉴스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광경이 눈에 띄었다. 뙤약볕 아래 끝없이 길게 늘어선 배급 행렬을 따라가던 눈길 속으로 여행 중에 만난 이들의 모습이 스쳤다.

 

어느 겨울, 우리 부부는 아프리카 여행 마지막 코스로 친구가 있는 남아공의 P로 향했다. 공항청사 밖으로 나가니 습한 열기가 훅하고 엄습했다. 친구네 집으로 가는 동안 눈부시게 푸른 하늘 아래 짙푸른 초목이 우리를 환영이라도 하듯 바람에 흔들렸다.

 

건물마다 나지막하니 가로로 이어지는 도시의 선이 무척 평온한 느낌이다. 여장을 풀고 밤늦도록 지난 이야기를 듣는 동안 한여름의 크리스마스가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다.

 

30년 전 선교사 친구 부부

 

30여 년 전, 선교사인 친구 부부는 할 일이 제일 많다는 생각에 머나먼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향했다. 첫 도착지인 K, 도로를 중심으로 백인마을과 흑인마을이 천국과 지옥으로 대비돼 보였다.

 

마을에 주민 센터를 세우고 굶주리는 아이들을 먹이는 게 급선무였다. 아녀자들에게 생활교육을 시키고 알코올 중독에 빠져있는 이들을 설득해 일터로 내보냈다. 그들 중 건실한 이들을 지도자로 세운 후 마을이 자립하게 됐다고 판단되면 다른 마을로 옮겼다.

 

P시로 온 게 아홉 번째. 그동안 하숙생 뒷바라지 등으로 경제활동을 한 결과 이젠 자력으로 그 일을 감당하고 있다.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면서 아파르트헤이트라는 극단적인 인종차별 정책 아래 특권을 유지하던 많은 백인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세상이 바뀌었다. 억압받던 농촌 흑인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었다.

 

백인 마을 곁마다 일거리를 찾는 흑인 마을이 생겼다. 그러나 일자리는 한정된 데다 궂은 일이 대부분. 마을이라야 널빤지로 비바람을 막을 정도의 집들이 게딱지처럼 붙어 있는 빈민촌이었다.

 

그곳에서 다시 아이들을 먹이고 술과 마약에 빠진 이들을 자립시키는 게 일이었다. 현지 백인들은 종종 이들 부부를 통해 금전이나 식품을 후원하고 있는데, 이는 아직도 대부분의 백인들은 흑인 맞닥뜨리기를 몹시 두려워하는 까닭이다.

 

몇 년 전, 정부에서 깨끗한 도시 만들기 캠페인을 벌였다. 도시마다 흑인 마을의 생활쓰레기로 거리가 지저분해졌기 때문이다. 부부는 흑인 아이들을 데리고 길가에 널린 쓰레기는 물론 바람 많은 항구도시에서 이리저리 날려 다니는 비닐봉지를 수거했다.

 

그 일로 P시가 최고상을 받게 되어 마을 주민들에게 청결의식과 자신감을 갖게 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부부에게도 큰 보람을 안겨주고, P시에서 인정받는 한국인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  넬슨 만델라가 남아공 최초의 흑인대통령이 되기 전 약 27년 동안 수감되어 있던 로벤섬(Robben Island) 풍경. 케이프타운에서 약 12km 바다 밖으로 테이블 만에 있는 섬으로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새까만 눈동자 희게 빛나는 치아

 

우리가 P시에 머물고 있는 동안은 크리스마스 시즌인 탓인지 거리엔 주로 백인 관광객이 많았다. 그러나 지위가 상승되어 부를 누리고 있는 듯한 흑인들의 모습도 종종 눈에 띄었다. 가는 곳마다 주차장에서 아이들이 마미라 부르며 반갑게 달려들었다.

 

새까만 눈동자의 아이들이 희게 빛나는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엄마 품에 안겨 센터에서 밥을 먹던 아기들, 어느새 커서 주차장에서 일하며 팁을 받아 살고 있는 거란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앞두고 그들이 일하는 주민 센터도 휴관하게 되어 2주 동안의 식량을 나눠 주기로 했다. 쌀과 설탕, 식용유에 과자와 통조림을 더해 각각 봉투에 담았다. 승합차에 선물을 한가득 싣고 찾아갔다.

 

많은 어린이와 아기를 품에 안은 여인들, 낮술에 취한 남자들까지 땡볕 아래 빼곡하게 모여 있었다. 여행 경비를 아껴 마련한 선물이 며칠 동안이라도 그들에게 최소한의 양식이 된다는 생각을 하니 뿌듯했다.

 

그러나 선물꾸러미 5백여 개는 순식간에 동나고 미처 받지 못한 이들이 기운 없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친구 부부가 지금껏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를 실감할 수 있었다.

 

 

만델라는 백인사회에 대해 보복하지 않고 화해와 평화, 단합을 주장하여 피 흘리는 일 없이 과거사를 정리했다고 한다. 그러나 백인마을 담장마다 철조망이 높이 설치돼 있고 가까운 거리도 차로만 이동해야 한다.

 

정적이 흐르는 주택가엔 덩치 큰 개와 함께 조깅하는 백인만 가끔 눈에 띌 정도. 일찍이 안온한 삶을 내려놓고 멀고 먼 타국에서 갈등 구조 속에 있는 흑인과 백인사회를 이어주는 역할도 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부부. 고등교육을 받은 의식 있는 젊은이들이 많아져 사회가 변화되기까지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며 한없이 안타까워했다.

 

그때 비로소 거리의 검은 꽃도 사라지고 자신들의 할 일이 없어질 거라며.

 

검은색 ‘African Flower!’ 작별할 때?

 

우리는 헤어지면서 올해 서울에서 만나 함께 여행하기로 철석같이 약속했었는데. 여행은커녕 항공편마저 끊겨 귀국도 못할 상황이 되니 친구네 안부가 궁금해 전화를 했다. 팬데믹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식량을 받으려는 행렬의 끝이 안 보일 정도란다.

 

때론 두려움마저 느끼지만 씩씩하게 잘 하고 있다는 말에 가슴이 울컥했다. 순간, 여행 중에 보았던 도심 곳곳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검은색의 ‘African Flower!’ 흑인마을 곳곳에서 무분별하게 버려지는 검정 비닐봉지, 거리에 나뒹굴다 철조망이나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모양이 마치 꽃송이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세상에서 가장 안타깝고 슬픈 꽃이 아닌가. 우리가 그곳을 떠나던 날에도 가로수에 피어난 검은 꽃들이 인도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세차게 휘날리고 있었다.

 

검은 꽃 질 날은 언제일까.

 

수필가 박성실

월간 좋은수필편집위원

著書 그래도 꽃은 핀다’(共著)

우리 동네 이야기’(共著)

 

 


원본 기사 보기:해피!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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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9/04 [23:06]  최종편집: ⓒ 투데이리뷰 & 영광뉴스.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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