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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나라! 유서깊은 터키”
<특별 연재> 박행주 ‘네번째 해외공연’(15)
 
박행주 / 국제전통예술교류협회 초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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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젤리시청앞 광장에서 모인 참가국 공연단. 당시 행사는 41개국 어린이팀 1,000여명을 초청하여 진행할 만큼 단일 어린이 행사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국제공연 경험이 많은 공연팀 선호

 

▲  박행주 / 국제전통예술교류협회 초대회장      

무엇이든 처음은 힘들지만 그 이후부터는 처음에 비해 비교적 잘 풀리는 경우가 많다. 세 번의 해외공연을 마치고, 특히 미국공연을 잘 마치고 오니 해외공연을 나가는 것이 좀 더 수월해졌다.

 

국제음악축제를 주관하는 입장에서는 국제공연 경험이 많은 공연팀을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무척 큰 규모를 자랑하는 터키공연에 우리 팀이 신청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미국공연을 다녀왔던 것으로 실력을 인정받아 터키공연 조직위에서는 흔쾌히 우리 팀을 초청하였다.

 

2010년에 참가하게 된 터키공연은 터키의 북서부지역에 있는 Kocaeli(코젤리)주에서 주최하는 행사였다. 매년 423일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수많은 외국의 어린이들을 초청하여 개최하는 국제적인 어린이날 행사였다. 당시 행사는 41개국 어린이팀 1,000여명을 초청하여 진행할 만큼 단일 어린이 행사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초청되었던 나라는 한국, 프랑스, 독일, 영국, 스웨덴, 헝가리, 러시아, 불가리아, 우즈베키스탄, 인도, 터키, 이라크, 세르비아, 키르기스탄, 에스토니아, 인도네시아, 마케도니아, 멕시코, 체코, 폴란드, 루마니아, 북오세티아, 타타리스탄, 모잠비크, 코소보, 아자라, 우크라이나, 알바니아, 그루지아, 알바니아, 벨라루스, 보스니아, 몰다비아, 라트비아, 몽고, 사이프러스, 말레이시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케냐, 베네주엘라 등이었다.

 

우리나라 팀은 풍물단 23명과 무용단 9, 학부모 3, 인솔자 2명 등 총 37명으로 구성하여 참가하였다. 미국 공연을 통해서 이미 작품을 준비하였기 때문에 공연준비에 대한 부담은 거의 없었다.

 

이전 공연과 바뀐 것은 모듬북 합주를 할 때 무용단이 했던 부채춤과 검무 이외에 연주 첫부분에서 태평무를 추가한 것이었다. 역동적인 연주로 이루어졌던 미국공연 작품에 변화를 주어 느리고 정적인 한국적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한국팀이 숙식했던 코젤리의 호텔   

 

알라신 숭배하는 이슬람 국가 터키

 

터키는 인구의 95%가 알라신을 숭배하는 이슬람 국가이다. 다소 낯선 종교로 인해 다른 중동국가들에 대해 우리가 친숙하지 않은 것과는 달리 터키는 우리에게 친근함이 느껴지는 나라이다.

 

그 이유는 터키가 한국전쟁 때 미국 다음으로 많은 15,000여 명의 군인들을 파병했고 그중에서 800여 명 정도가 전사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서로 형제의 나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 3,4위전에서 우리나라와 경기를 할 때 수많은 우리 국민들이 터키국기를 들고 힘차게 응원한 일이 있었다. 이러한 우호적인 모습 때문에 한국인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었다.

 

국민소득은 우리나라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지만 세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많은 문화유적을 잘 보존하고 있는 나라였다. 또한 지리적으로도 동서양이 만나는 곳이라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매년 막대한 관광수입을 얻고 있는 나라이기도 했다.

 

그리스, 로마, 오스만제국의 수도이기도 했던 이스탄불의 경우 보스포루스 다리로 두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다리를 기준으로 서쪽은 유럽, 동쪽은 아시아로 나뉘는 독특한 도시이기도 하다.

 

▲ 양국의 국기를 흔들며 참여한 거리 퍼레이드. 시청까지 가는 퍼레이드는 참가국 모두가 참여하는 대규모 퍼레이드였는데 우리나라팀은 악기를 매지 않고 참여하였다    

 

 

홈스테이 무산아쉬움이 남았던 공연

 

터키공연은 방학기간을 포함하고 갔던 다른 공연들과는 달리 학기 중인 4월 말에 추

진되었다. 12시 무렵에 출국하여 다음날 아침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하였다. 이어

서 주최측에서 준비한 버스를 타고 행사지인 코젤리주로 이동하였다.

 

우리나라 팀만 호텔에 투숙하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었다. 애초 주최측에서는 행사기간 중에 서로 다른 나라 어린이 두 명이 짝을 지어서 한 가정에 머무르는 홈스테이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1,000명의 어린이가 500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터키의 공무원이었던 담당자가 우리나라측에 연락을 할 때 한 명이 한 가정에 배정된다는 내용만 전달하였다. 다른 나라 한 명과 함께 홈스테이를 하는 부분이 누락된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종교·문화적으로 우리와 많은 차이가 있는 나라에 어린이 한 명씩만 홈스테이를 한다는 얘기에 많은 학부모들이 우려를 표시하였다. 특히 딸을 둔 부모들의 우려가 커서 그렇게 가는 경우에는 참가를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몇 명이 전달하였다.

 

▲  스타디움에서 퍼레이드가 끝난 뒤의 모습.

 

 

▲  스타디움에서 개막식을 할 때 마스게임하는 장면  

 

이 때문에 우리는 홈스테이 대신에 별도의 숙소를 마련해줄 것을 행사 조직위원회에 요구했고 결국 한국팀만 호텔에서 숙식을 하게 되었다. 호텔시설이 깨끗하고 규모가 컸는데 알고 보니 그 지역에서 가장 시설이 좋은 호텔이었다.

 

해외공연팀에 전달을 제대로 하지 못한 다소 미숙한 담당자로 인해 조직위원회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추가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로서도 터기 가정에서 다른 나라 친구와 함께 며칠을 지낼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되어 많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도착 다음날 첫 행사는 길거리 퍼레이드였다. 시청까지 가는 퍼레이드는 참가국 모두가 참여하는 대규모 퍼레이드였는데 우리나라팀은 악기를 매지 않고 참여하였다. 사전에 비디오로 우리의 작품을 보았던 조직위원회에서 풍물악기소리가 너무 커서 앞 뒤의 퍼레이드 참가국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다소 아쉬웠지만 우리는 한국 국기와 터키국기를 들고 흔들며 퍼레이드에 참여하였다.

 

퍼레이드 다음 날은 모든 참가국이 이스탄불로 이동하였다. 공연이 아니라 관광을 위해서였는데 미니아투르크라는 곳에 모였다. 이곳은 터키의 오랜 역사와 관련된 것들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놓아서 단원들이 흥미롭게 관람하며 사진 촬영을 많이 할 수 있었다.

 

 퍼레이드 후 다른 나라 공연단과 함께 어울렸던. 좌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 앞에서 퍼레이드를 하고 나서 마스게임 등 여러 공연을 관람하였다. 

 

 

▲  퍼레이드 후 다른 나라 공연단과 함께 어울렸던 모습. 좌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 앞에서 퍼레이드를 하고 나서 마스게임 등 여러 공연을 관람하였다.  

 

한국에서 들려온 갑작스러운 비보

 

순조롭게 진행되던 터키일정에서 갑작스러운 문제가 발생한 것은 그다음 날 새벽이었다. 필자의 부친이 작고하셨다는 비보를 받게 된 것이다. 부친은 터키공연 몇 달 전에 많이 아프셨다가 회복을 하셨고 가끔 기력이 약하신 것 말고는 큰 문제가 없으셨던 터라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연락이었던 것이다.

 

행사진행과 통역을 위해 함께 참가하였던 IOV(UNESCO-NGO)담당자는 그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참가하라고 급히 한국행 비행기표를 구해 주었다. 성인예술단들의 경우 단장이나 부단장이 부모상을 당하는 경우에 도중에 귀국한 사례들이 있어서 그렇게 준비해준 것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도저히 단원들을 두고 올 수가 없었다.

 

공연도 공연이지만 한국팀 전체를 인솔하며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데 가정사를 이유로 혼자 귀국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마침 그날 하루는 코젤리시에 있는 현대자동차 공장을 견학하고 놀이시설이 있는 공원에서 야유회가 있는 날이었다. 배려덕분에 IOV담당자와 무용팀 감독, 학부모님들이 단원들을 인솔하여 참여하였다. 그날 필자는 호텔에 남아 장례식에 참가하지 못하는 아픈 마음을 달래며 하루를 보냈다.

 

단원들에게는 필자가 몸이 좋지 않아서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전달을 했더니 단원 몇 명이서 저녁에 필자의 호텔방 문틈으로 쪽지를 보냈다. ‘선생님 많이 아프시다는데 오늘밤까지 푹 쉬시고 내일부터는 함께 해요. 사랑해요라는 내용들이었다. 그 쪽지를 받으니 단원들에게 필자가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느낄 수 있었고 힘을 내서 다음날 일정부터 차질없이 진행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필자가 장례식에 참가하지 못하자 단원들의 부모님들이 필자 대신 장례식장을 찾아 조의를 표하였다고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필자의 부친은 당신의 죽음에 임박했다고 느꼈을 때 필자의 모친께 유언을 남기셨다고 한다.

 

국가적인 행사에 막내아들이 학생들을 인솔해서 참여하는 만큼 혹시라도 출국 전에 돌아가시게 되면 그때 알리지 말고 출국 후에 알리라는 것이었다.

 

40년 넘게 교직에 계셨던 필자의 부친은 일단 학생들을 데리고 해외에 가게 되면 부친상을 당하더라도 학생들을 두고 중간에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런데 혹시라도 출국전에 비보를 전해 들으면 해외공연 참가에 문제가 될지 몰라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되도록 출국까지는 버티시려고 하셨고 의식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터키에 잘 도착했다는 말씀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셨다는 말씀을 나중에 전해 듣게 되었다. 덕분에 필자의 형제들은 미리 소식을 전해 듣고 모두 임종을 지킬 수 있었다.

 

▲ 몰려드는 터키관객들과 사진촬영하는 모습. 같이 사진을 찍고 나서 이동을 해야 하는데도 버스 주변에 관객들이 계속 몰려들어서 제 시간에 출발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부친의 유고 끝까지 마무리한 공연

 

다음날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단원들 앞에 서서 행사일정을 함께 했다. 그날은 35,000명정도 모일 수 있는 스타디움에서 어린이날 축제가 있었다. 좌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 앞에서 퍼레이드를 하고 나서 마스게임 등 여러 공연을 관람하였다.

 

오후에는 Golcuk(귤축)이라는 도시로 이동하였다. 그곳에서 그루지아, 알바니아와 팀과 함께 2,000여 명의 관객이 모인 야외무대에서 공연을 펼쳤다. 사물놀이, 부채춤, 모듬합주 등 다양한 연주를 하였는데 공연이 끝나자 많은 관객들이 몰려들었다.

 

그 이유를 알고 봤더니 터키에서 당시 한류가 한참 퍼지는 상황이어서 한국 공연팀에 대한 관심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같이 사진을 찍고 나서 이동을 해야 하는데도 버스 주변에 관객들이 계속 몰려들어서 제 시간에 출발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음날에는 행사 조직위 부위원장이 한국팀을 점심식사에 초청하였다. 교외의 근사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고 특별히 터키 전통고급요리를 주문해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처음 먹어보는 음식의 향과 맛에 익숙하지 않았던 단원들은 조금 먹고 나서는 더 이상 먹지 않았다. 필자도 입맛에는 잘 맞지 않았지만 단원들을 대신해서 열심히 먹으면서 성의에 감사를 표했다.

 

▲ 점심식사후 조직위원회 관계자들과 함께 한 모습 . 

 

미국 공연과는 달리 터키공연에서는 어린이 공연단체의 공연일정을 많이 잡지 않았다. 두 번의 퍼레이드를 제외하면 야외공연과 메인공연밖에 없었다. 전해들은 바로는 어린이들에 대한 배려 때문이었지만 많은 악기를 가져오면서 되도록 여러 번 무대에 서고 싶어 했던 풍물단으로서는 무척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행사 도중에 건의를 해서 풍물단은 행사계획에 없었던 백화점 광장공연을 했다. 길거리 공연과도 비슷했는데 많은 관객이 몰려들어 박수를 보내주었고 백화점 측으로부터는 개별선물도 받아 단원들이 흐뭇해했던 기억이 난다.

 

저녁에는 메인공연이 있었다. Interteks Fair라는 행사장에서 진행되었는데 우리나라의 킨텍스와 비슷한 규모의 행사장이었다. 그곳에서 40여 개의 해외공연팀이 공연을 하였기 때문에 무척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모둠북 합주를 연주했던 한국팀이 많은 박수갈채를 받고 나서 이동을 하는 도중 많은 관객들이 또 몰려드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그들은 한참 유명세를 치르던 빅뱅’, ‘슈퍼주니어손팻말을 들고 한국팀 사랑해요라고 외쳤다. 함께 수차례 사진촬영을 하였는데 야외공연에서처럼 한류덕분에 우리팀 단원들도 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점심식사전 조직위원회 부위원장과 선물을 주고받는 모습. 다음날에는 행사 조직위 부위원장이 한국팀을 점심식사에 초청하였다.    

 

해외공연 통해 공연기획자의 길

 

행사를 마친 다음날부터는 23일 동안 이스탄불의 문화답사를 하였다. 유람선을 타며 가이드 설명을 듣던 중 단원가운데 한 명이 수첩에 뭔가 열심히 적는 것을 보았다. 그 단원은 공연 중간 중간에도 틈이 날 때 계속 메모를 하곤 하였다. 세 번째 해외공연에 참가하는 단원이었는데 대화를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해외공연을 다녀보니 많은 연주자들이 있지만 그 공연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공연기획자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은 연주자보다는 그런 공연기획자가 되는 것으로 진로를 정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틈나는 대로 메모를 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백화점 공연후 단원들과 함께 한 모습. 행사 도중에 건의를 해서 풍물단은 행사계획에 없었던 백화점 광장공연을 했다.     

 

보통 전통예술을 배우면 그중에 몇 명은 연주자 쪽으로 진로를 정하게 되고 필자의 제자들도 그런 경우가 몇 명 있었다. 하지만 그 단원처럼 연주자가 아닌 공연기획자가 되겠다고 하는 경우는 처음 보았고 해외공연을 통해 단원들은 매우 많은 기회를 얻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단원은 현재 전통음악으로 인지도가 매우 높은 대학에서 학업을 하며 공연기획자의 길을 가고 있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보람 중 하나였다.

 

귀국해서는 휴가를 내고 홀로 부친의 묘소를 찾았다. 장례식에도 참석 못한 불효를 멀리서나마 이해해주실거라 생각하며 절을 올렸다. 그리고 아들이 가는 길을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신 고인의 뜻을 기려 더욱 열심히 이 길을 가겠노라고 다짐하였다.

 

▲  메인공연장에서 했던 모둠북합주. 저녁에는 메인공연이 있었다. Interteks Fair라는 행사장에서 진행되었는데 우리나라의 킨텍스와 비슷한 규모의 행사장이었다. 

 

프로필

* 국제전통예술교류협회 초대회장

* 서울교대 졸. 중앙대 대학원 박사

* 중앙대학교 국악교육대학원 외래교수

* IOV(UNESCO NGO)이사

* 2016 올해의 스승상 수상

* 이메일 apron20@hanmail.net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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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9/17 [03:19]  최종편집: ⓒ 투데이리뷰 & 영광뉴스.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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