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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産母의 구세주 ‘젬멜 바이스’
“醫師 손소독 일등공신…사망률 급속히 낮춰”
 
소정현기자

코로나 바이러스! ‘손씻기 운동각종 질환급감

19세기 유럽 산욕열 공포원인규명 속수무책

 

병원에서 높은 사망률후일 세균이 범인 규명

혁신적 공로에도 불구 의료계에서 배척 悲哀死

 

▲ 지난 2020320일 구글 두들(Google Doodle)의 초기 화면에는 이그나스 젬멜 바이스의 모습이 전격 소개되었다.   

2019년 말부터 촉발된 코로나 바이러스는 백신 접종에도 불구하고 2021년 현재진행형으로 우리 인류의 모든 것을 강탈해 버렸다. 그러나 백신 접종 못지않게 마스크 착용과 철저한 위생 특히 손 씻기는 코로나 감염의 상당 부분을 차단할 수 있다는 현장 리포트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 가정은 물론 여러 기관과 장소에서 손 소독 등이 일상생활에서 필수적이 된 것이다.

 

지난 2020320일 구글 두들(Google Doodle, 구글이 로고를 특정 이슈나 기념일을 주제로 바꾸는 것)에는 초기 화면에 이그나스 젬멜 바이스의 모습이 전격 소개되었다. 1847320! 이 날은 이그나즈 젬멜 바이스가 오스트리아 빈 종합병원 산부인과 병동 주임으로 임명된 날이다. 코로나시대 손 씻기의 중요성이 유독 강조되며 구글에서 그의 업적을 기려 로고로 만든 것이다.(편집자 주)

 

헝가리 출신의사 이그나스 젬멜 바이스

 

헝가리 출신 의사인 이그나스 젬멜 바이스’(Ignaz Semmelweis, 1818~1865)는 산욕열(puerperal fever)에 걸려 사망하는 임산부를 크게 줄인 손 소독법에 관한 선구자로, 산모의 구원자라고도 불린다. 비엔나종합병원에서 일했던 그는 두 개의 산부인과 병동에서 산욕열로 인한 사망률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두고 깊이 고민했고, 손을 씻는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이 사망률을 현저하게 낮추는 데 기여했다.

 

▲ 헝가리 출신 의사 이그나스 젬멜 바이스는 산욕열(puerperal fever)에 걸려 사망하는 임산부를 크게 줄인 손 소독법에 관한 선구자로, 산모의 구원자라고도 불린다. capture library.uabweis   

 

이그나스 젬멜 바이스는 1818년 헝가리왕국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당시 헝가리왕국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일부였으며 훗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된다. 처음에는 대학교에서 2년간 법학을 공부한 후,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유학 법학 대신에 의학을 전공하여 오스트리아 빈종합병원의 산부인과에서 근무했다.

 

이그나즈 젬멜 바이스가 활동한 19세기 중반에 당시 산욕열은 유럽의 산모 중 약 10~35%의 사망률을 기록할 정도로 공포의 질환이었다.

 

출산 시 신생아가 산모의 좁은 산도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산모는 종종 질과 회음부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곤 한다. 산욕기는 분만 후 4~6주까지의 기간을 의미하며, 산욕열은 산욕기에 38도 이상의 고열이 지속되는 경우를 말한다. 산욕열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나 대부분 산후에 산도의 감염에 의해 발생한다.

 

출산으로 인한 상처는 저절로 아무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상처를 통해 균이 침입하면 감염과 고열을 일으키는 산욕열이 발생하는데 이는 왕족이나 귀족, 평민 구분이 없었다. 1820년 스코틀랜드 작가 존 맥킨토시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런던 거리 모퉁이마다 무서운 질병으로 죽은 엄마들을 애도하는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유럽이나 미국이나 일반적인 분만의 경우 95% 정도는 정상적인 출산을 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병원에서 아기를 낳는다면 모성 사망률이 무려 5배 이상 치솟았다. 이때는 병원은 감염의 온상이었고, 오직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근원적인 치료만 제공하는 곳이었다. 병원의 사망률은 집보다 서너 배씩 높았다. 집에서 치료받는 게 훨씬 안전했다.

 

수술실은 그 안에서 일하는 외과 의사만큼이나 더러웠다. 소변과 토사물, 여러 체액으로 가득한 병원. 당시 병원은 냄새가 어찌나 지독한지, 근무자들이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다녀야 할정도였다. capture vajiramias.com   

 

공포의 병원 산모 사망률 높아

 

19세기 중반 당시는 아직 세균의 존재가 알려지기 전이다. 19세기 중반에는 독기라는 부식성 물질 입자가 공기 중의 유독한 증기를 타고 전해지면서 질병이 퍼진다고 믿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사람이 아픈 이유가, 주변 공기의 독기에 있다고 여겼었기 때문에, 창문을 열고 문에 구멍을 뚫는 식으로 대처했었다. 당연히 산부인과 병동의 사망률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전에 수술했던 환자의 흔적이 그대로 남은 수술대가 놓여 있는 수술실은 그 자체로 더러웠다. 수술실에서 일하는 외과 의사 역시 예외일수 없었다. 소변과 토사물, 여러 체액으로 가득한 병원. 당시 병원은 냄새가 어찌나 지독한지, 근무자들이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그때 의사들은 손이나 수술 도구를 잘 씻지 않았다. 산모들 침대도 곤충들이 많고 체액 때문에 끈적거렸다.

 

제멜 바이스는 위생적인 조치, 손과 기구의 소독, 보호복 착용 등을 도입하여 단시간 내에 산부인과 병원의 두 자릿수 사망률을 1%로 낮추었다. capture owlcation.com     

 

1844년 젬멜 바이스는 빈종합병원의 산부인과에서 일을 하게 된다. 당시 빈종합병원은 한해에만 7,000-8,000건의 분만이 이루어지는 당대 최고의 산부인과 병원이었다. 그러나 빈 종합병원에서만 그때 매년 700여 명의 임산부가 사망해서 산부인과 병동의 별명이 죽음의 집일 정도였다.

 

산부인과 제1병동에는 학문적으로 교육받은 의사들과 의대학생들이 근무하면서 아이들을 받았고, 2병동에는 교육이 별로 없는 산파들이 아이를 받았는데 제1병동보다 제2병동의 사망률이 훨씬 낮았다. 의사가 전문적인 직업임을 감안하면, 1병동에서의 산모 사망률이 제2병동보다 높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1분만동에서는 1847년 기준, 산모 1,000명당 98.4명의 사망률을 기록했다. 산파들이 돌보는 제2분만동 사망률은 1,000명당 36.2명이었다. 당시 9.9%에 달하는 제1분만동의 사망률은 제2분만동에 비해 약 3배에 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두 병동에서 사망률에 차이가 났을까?

 

오늘날의 손씻기 운동의 선각자! 젬멜 바이스! 오늘날 손 씻기는 병원에서 감염을 예방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 됐다.  capture likelocals.blog 

 

1병동은 예비의사가 시체해부를 한 실습을 마치고 바로 현업에 투입되는 병동이고, 2병동은 일반적인 병동이었다그러나 분만 실습은 의대생이나 산파들이나 별 다른 것은 없었고, 다만 의대생들은 해부 수업을 참관하느라 부검실을 오가기는 했다.

 

그러나 특히 제1병동의 의사들은 시체를 만지거나 감염성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사용한 기구 등을 다루다가 아무런 조치 없이 분만실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에는 의사들이 진찰 전에 손을 소독하지 않던 때이니까, 시신 해부를 한 더러운 손에 뭔가 나쁜 것이 묻어 올수 있다고 강하게 추정했다.

 

손씻기 시행 산모 사망률 급감

 

젬멜 바이스는 부검 도중 우연히 수술용 메스에 찔린 선배 의사가 사망하는 일이 일어난 이후 사체 오염과 산욕열 간의 연관성에 주목했다. 젬멜 바이스의 선배 의사인 야코프 콜레츠카가 부 실습을 가르치다가 우연찮게 해부하던 학생의 칼로 찔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시신을 부검하던 중 실수로 입은 작은 상처 때문에 감염으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해부하는 칼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해부할 때 아무도 장갑이나 보호장비를 착용하지 않았다. 해부 수업을 마친 의대생들이 옷에 살점과 피 묻은 휴지를 묻힌 채 병동을 드나드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특히 해부용 칼이 피부에 내는 상처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위험했다. 가장 노련한 해부학자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찰스 다윈의 삼촌도 아이의 시신을 부검하다 상처가 생겨서, 고통받으면서 세상을 떠났다.

 

젬멜 바이스의 업적은 그의 사후 프랑스 미생물학자 루이스 파스퇴르’(Louis Pasteur)가 세균 이론을 확립하면서 인정을 받게 됐다. capture https://europepmc.org

 

그런데, 이 교수가 산욕열로 죽은 산부들과 동일한 증세로 사망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출산한 여성은 산욕열 발생률 자체가 매우 낮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젬멜 바이스는 1848년 해부실에 있다 제1병실의 분만실로 가는 의사들은 산모를 돌보기 전에 소독액을 사용해 손을 씻게 했다. 또한 산모를 진찰하기 전에 염화석회액으로 아주 꼼꼼하게 손을 씻고 깨끗한 가운으로 갈아입을 것으로 규칙으로 정했다. 이로써 환자의 사망률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그 결과 첫 번째 병동의 사망률이 두 번째 병동과 유사한 수준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1분만동 사망률이 18%에서 1.3%로 수직 낙하한다. 의대생 병동의 산모 사망률이 1,000건당 12.7건으로 급감한 것이다.

 

그는 위생적인 조치, 손과 기구의 소독, 보호복 착용 등을 도입하여 단시간 내에 산부인과 병원의 두 자릿수 사망률을 1%로 낮추었다. 같은 시대의 프라하나 비인이 아직도 10~15%의 산욕열 사망률을 보이고 있을 때 그가 재임하던 병원의 평균 사망률은 단지 0.85%에 지나지 않았다.

 

의료계에서 배척 결국 悲哀死

 

의사들은 산모 사망률 급감에 소식에 무척 놀랐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의사들은 그의 주장에 귀를 닫았다. 그의 주장은 의료계에서 매우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일부 의사들은 손을 씻어야 한다는 제안에 불쾌해하며 그를 조롱했다.

 

아울러 손 씻기를 제대로 하면 산욕열을 방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그 동안 의사들이 손을 제대로 씻지 않아서 산모들이 죽은 것이라는 말이 되므로 의사의 손으로 이루어진 대학살에 대한 맹렬한 비난을 각오해야 하는 중대한 사안으로 보았다.

 

젬멜 바이스가 죽고 나서야 보수적인 의학계도 결국 그의 이론을 수용했다.

capture en.numista.com    

 

오스트리아는 젬멜 바이스를 추방했다. 1849년 병원에서 빈종합병원에서 고용 계약이 갱신되지 못하고 일자리를 잃었다. 대학의 산파를 교육하는 일에 지원했지만 거절당했다. 고향인 조국으로 돌아온 젬멜 바이스는 이후 6년간은 장크트로후스 병원’(St. Rochus Hospital)에서 일했다.

 

부다페스트로 돌아간 젬멜 바이스는 그곳에서도 멸균법의 우수성을 확인한 후 1861년 무균처리가 산욕열로 인한 사망률을 감소시킨다는 내용의 산욕열의 원인, 개념과 예방이란 책을 발간했다.

 

이러한 혁혁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젬멜 바이스의 관찰 결과는 당시에 과학적, 의학적 견해와 상충되었고 그의 의견은 많은 의학계로부터 거부당했다.

 

유대인이자,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여기던 젬멜 바이스는 자신을 지지하는 동료들이 많았음에도 논쟁의 소용돌이를 비켜가지 못했다. 이러한 조롱이 그에게는 너무 큰 상처가 되어 신경쇠약으로 이어졌다. 그는 공개서한을 통해 자기 방법을 받아들이지 않는 의사들을 살인마로 규탄했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으며, 일종의 치매 증상도 보였다.

 

결국, 1865년에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되어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의 부인과 동료들은, 그를 새로 지은 병원에 가보자고 유인하여 빈 정신병원에 수감시켜 버렸다. 정신병 담당의가 아닌 세 명의 의사가 그가 정신병이라고 진단내리고, 환자복을 입혔다. 젬멜 바이스가 눈치채고 도망치려 하자 정신병원 직원들이 그를 어두운 병실로 데려가서 심하게 폭행했다.

 

결국, 병원에서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오른손에 생긴 상처의 감염이었다. 그는 자신이 입은 손가락 상처로 인한 패혈증으로 2주 후 47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그가 평생에 걸쳐 싸워왔고 그를 웃음거리로 내몰았던 감염이 결국 그의 목숨을 빼앗긴 것이다.

 

세균 문제를 이해하기 전에, 먼저 병원 안 일상적 불결함에 대처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병원내 소독은 1880년대에 이르러서야 산부인과에만 일반화됐다. 젬멜 바이스의 혁신적인 주장이 인정받고 임상에 적용되어 의사들이 열심히 손을 씻게 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 되었다.

 

물론 병원에서 의사의 손에 죽는 환자들의 수는 급감하게 된다. 그의 발견은 질병의 원인과 예방에 있어 주목할 만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으며, 그 이후로 많은 생명을 구하게 된다.

 

당시에는 세균에 관한 이론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젬멜 바이스의 업적은 그의 사후 프랑스 미생물학자 루이스 파스퇴르’(Louis Pasteur)가 세균 이론을 확립하면서 인정을 받게 됐다. 결국, 젬멜 바이스가 죽고 나서야 보수적인 의학계도 결국 그의 이론을 수용했다.

 

▲  외로운 선각자! 제멜 바이스의 한신적 노고를 기념하다. capture https://www.lindahall.org

 

젬멜 바이스는 훗날 재조명됐다. 헝가리 정부는 1891년 비인의 공동묘지에 매장돼있던 제멜 바이스의 유해를 부다페스트로 옮기고, 1906년에는 부다페스트 광장에 그를 기리는 동상을 세웠다. 60년이 지난 1969년에는 부다페스트에 젬멜 바이스 대학교(Semmelweis University)를 세워 이 외로운 선각자의 노고를 기념하고 있다.

 

오늘날 손 씻기는 병원에서 감염을 예방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 됐다. 오늘날 우리는 미생물학. 세균학, 바이러스학, 면역학의 연구를 바탕으로 이제 실생활에서 보호 및 위생의 중요성을 받아들이고 있다. 당시에는 의사가 부검을 하고난 후에도 소독하지 않고 수술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것이 오늘날의 손씻기 운동의 시초가 되었다.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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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8/25 [17:43]  최종편집: ⓒ 투데이리뷰 & 영광뉴스.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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