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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에 예쁜 비 눈물자국 또르르”
 
림삼 시인

 

 

 

 

봄비 나그네 

 

 

 

▲   pixabay.com

 

눈물자국 채 마르기 전

살풋 미소 하나 만들어주곤

안타까운 마음 담아

조막만 한 두손 모은

소녀의 기도, 소리 울린다

 

뒤돌아서 갈 길 가는

봄비인 걸

정작 난 무슨 말을 게 보탤까나?

이다지 저렴한 삶에

여린 흔적으로 숨결 홀로 얹어

풀잎에 또르르-

예쁜 비 내리는데

 

봄이 아름다운 이유는

씨를 뿌리기 때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또 하루는 비속으로 숨어살고,

조금은 멀리로 돌아

스스로 상실의 궤짝에 갇힌

기억 어설피 흩어지기에

계절통으로 아파했던 언젠가의 봄이

 

고운 비로 되어져, 정겨운 비로 되어져

솟는다

솟는다

 

나그네인 양 하늘로 솟아오른다

 

詩作 note

계절은 4월의 하순인데 느낌은 하마 초여름이다. 일찍 오시려는가? 더위 손님이... 허기사 계절 잊고 산지 이미 오래된 걸 새삼 절기 탓 하려니 조금은 민망하다. 철이야 흐르건 말건, 시절이야 지나건 말건, 그리고 세월이야 가건 말건, 무심한 척 살아온 근동의 삶이 차마 이름 붙이기도 추레한 모양새다. 일이 안 풀릴 때마다 남 탓 하며 살아낸 내 삶이라는 게 고작 주관적인 결정 하나 못 내리는 지금의 결과치라면 한 평생 내가 이룬 건 무엇이며, 내가 추구해온 삶의 방정식은 대관절 무엇이었던가?

 

돌아보는 굴곡마다 가득한 회한이 뒷꼭지를 틀어잡는다. 어언 나이 70 고개마루. 앞으로 숨 내쉬며 호기 부릴 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갈길을 찾지 못한 채 이리도 번다하게 헤매돌고 있는 겐지. ! 생각할수록 가없는 방황이 야속하고 또 야속하다. 그러니 이 노릇을 어쩌랴? 어차피 주어진 섭리 안에서 작은 몸부림이나 절규 따위는 그저 찻잔 속의 바람일진대, 하릴없이 머금어지는 썩소로 오늘도 일기장을 대한다.

 

이 봄에 나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 어떤 걸 남겼으며, 또 어떤 일을 달성했는가? 스스로에게 묻다가 언뜻 떠오른 봄의 발걸음 숫자에 화들짝 놀라며 다시 한 번 달력을 쳐다본다. 그래! 이제 또 올 봄은 이렇게 저물어가는 거구나. 별로 몇 차례 남지 않았을테지만, 일단은 다시 와줄 내년 봄에는 반드시 멋진 추억을 장만할 수 있는 힘을 미리부터 기르고 있어야겠다. 내심 다잡은 마음가짐으로 벼르면서 종주먹 허공으로 흔들어 허접한 객기를 부려본다.

 

그리고는 이내 봄이 왜 좋은 건가 하는 생각에 몰두해본다. 그렇다. 봄은 떠나갔던 이들이 돌아와서 좋다. 알 듯 모를 듯 곁으로 다가오고, 보일 듯이 안 보일 듯이 수줍음이 있어 좋다. 소리 없는 웅성거림에 마음 들뜨고, 작은 바람도 손에 잡으면 꿈틀하는 그 감각이 좋다. 그런가 하면 봄은 우리 모두를 예쁘게 만들어서 좋다. 희고 노랗게 붉은 듯 초록이 되며, 안 한 듯 화장한 듯한 그 모양이 참 아름답다.

 

소리 없이 웃는 모습에 마음이 들뜨고, 연한 꽃잎이 손짓을 하면 콩닥하며 가슴이 뛴다. 봄은 서로서로 아끼는 마음이 되어서 좋다. 내 것, 남의 탓 없고, 욕심과 미움보단 보듬고 어울리며 함께함이 있어 좋다. 소리 없이 서로 아끼니 마음 들뜨고, 살짝 내미는 사랑 표현엔 둥둥 하늘을 난다. 이렇듯 좋은 봄을 제대로 누리고 벅차게 감동으로 새기지 못한 올 봄이라니, 이 얼마나 처량하고 후회막심인 날들이었는가? 살기에 너무 바빠, 일상을 견디기에 너무 벅차서 미처 돌아보지 못한 봄이라서인지 더 아쉽고 그립다.

 

그렇지만 걱정은 말자. 살기가 차마 힘들면 잠시 나무 근처의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면 될 일이다. 고민해도 달라질 게 없다면 딱 오늘까지만 고민하고 내일은 내일의 삶을 다시 살아가면 되는 일이다. 꿈을 꾸어도 달라질 게 없다 하여도, 그래서 꿈은 그저 꿈에 불과할지라도, 그래도 내일부터 다시 꿈을 꾸어야겠다. 그 꿈으로 하여 더 불행하거나 불안한 내일이 올지라도 오늘 내가 꾸는 꿈은 꿈이라서 행복한 거다.

 

평상시에 웃을 일 하나 없어 웃음이 안 나온다 해도, 그래도 내일부터 그냥 이유 없이 웃기로 한다. 힘들다고 술로 지우면서 망각하려 하지 않고, 아프다고 포기하며 세상과 작별할 생각 않고, 도무지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감당하기 힘든 위기가 닥쳤다고 짜증내지 않고, 그냥 그러려니 하련다. 어차피 세상 사는 게 다 그런 거니까. 다른 사람들도 모두 비슷한 고민과 고통으로 시달릴테니까 말이다.

 

좋지 않은 일은 심플하게 생각해서 합리적으로 결정하고, 좋은 일만 거창하고 복잡하게 자꾸 끄집어내서 스스로를 위로하며 자가최면을 걸어보련다. 힘을 내야겠다. 후회 없이 부딪혀서 지지 않는 오늘의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두렵지만 이겨내도록 하련다. 인생은 다행스럽게도 참으로 고마운 거다. 내일도 계속될 거니까 말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의 기회를 내게 부여해줄 거니까 말이다. 마치 선물처럼.

 

그러니 가슴 아파하지 말고 비록 가진 게 많지 않더라도 기왕이면 나누며 살다 가면 좋겠다. 버리고 비우면 또 채워지는 것이 있으리니, 할 수만 있다면 나누며 살다 가야겠다. 내 마음이 예수님, 부처님 마음이면 상대도 예수, 부처로 보인다고 하는 것을... 누구를 미워하지도, 누구를 원망하지도 말아야겠다. 많이 가진다고 행복한 것도, 적게 가졌다고 불행한 것도 아닌 세상살이 아닌가?

 

재물 부자이면 걱정이 한 짐이요, 마음 부자이면 행복이 한 짐이라는 말이 있다. 죽을 때 가지고 가는 것은 마음 닦는 것과 복 지은 것 뿐이라고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갈 날도 많지 않은데, 누군가에게 감사하며 살아갈 날도 많지 않은데, 남은 세월이 얼마나 된다고, 가슴 아파하며 살지는 말아야겠다. 누구라도 가리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엇이든 거부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리 살다 가도록 노력해야겠다.

 

열흘만 살다가 버리는 집이 누에고치이고, 여섯 달만 살다가 버리는 집이 제비들의 집이며, 1년 동안 살다가 버리는 집이 까치들의 집이다. 그런데도 누에는 집을 지을 때 창자에서 실을 뽑고, 제비들은 자기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들며, 까치들은 볏짚을 물어 오느라 입이 헐고 꼬리가 빠져도 지칠 줄을 모른다. 그들이 일시적으로 머물다가 떠날 집이라 하여 적당히 짓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며 삼라만상의 정해진 이치인 것이다.

 

그러나 또한 변치 않는 진실이 있으니, 완전한 소유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연계에 있어 자연을 완전히 소유하는 생물체는 어디에도 없다. 태어난 모든 생물체들은 이 땅에서 살아 있는 동안, 자연에서 잠시 빌려 쓰고 떠날 나그네와 같은 존재들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소유해야 할 것은 물질이 아니고, 아름다운 마음일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얻은 것이 진정 우리의 소유물이다.

 

사람은 어려움을 만나야 자신의 의지력을 발휘할 수 있다. 때문에 모든 일이 순조로울 때는 절제를 잃고 산만해져 많은 세월과 기회를 허비하기 쉽다. 심지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아

생활의 원칙과 방향을 상실하기도 한다. 사람의 의지력은 인생의 모든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는 요소로써 인간활동의 모든 상황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돈이 많으면 절약을 잊어 재산을 탕진하게 되고, 지위가 높으면 절제를 몰라 권력을 잃게 되며, 큰 명성을 누리다보면 지조를 잃어 이름을 더럽히게 된다. 사람이란 존재는 고난을 잘 이겨내야 무슨 일에서든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고난을 이겨내지 못하면 자신을 망치게 되고, 행운이 다가와도 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그냥 밟고 지나가게 된다. 마치 봄이 와도 그걸 느끼지 못하고 마음속에 겨울을 꼭 감춰놓은 채로 추위를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사실은 올 해도 봄이 내게 와준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물끄러미 뒷태를 보이고 있는 봄을 보고 있노라면 감동의 울렁거림이 목끝까지 올라온다. 그래도 내가 봄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렇게 잊지 말고 다시 찾아와 달라는 거다. 그리고 가능한 한 오래도록 내 곁에 있어 달라는 것이다. 그저 이것 뿐이다. 그래도 이것이 내게는 너무도 큰 기쁨이다. 봄이 아직 봄비를 담뿍 머금고 내게 머물러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참 행복하다.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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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4/26 [20:11]  최종편집: ⓒ 투데이리뷰 & 영광뉴스.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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