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ΰ
광고
편집  2024.11.12 [13:20]
전체기사  
관광·문화
회원약관
청소년 보호정책
회사소개
광고/제휴 안내
기사제보
HOME > 관광·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土曜 隨筆> 이현숙 ‘뻥이요!’는 ‘꿈이요!’
 
수필가 이현숙

 

  이현숙 수필가 

고소한 냄새가 풍겨 왔다. 투명한 가을 햇살에 베란다 문을 열었을 때였다. 익숙한 토요일 냄새다. 토요일이라고 누구나 다 삶이 구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외로움 또는 씁쓸함, 어쩌면 고통 가운데 있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삶이란 그럴 때가 더 많지 않은가. 아저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온종일 동네 공기를 바꾸어 놓는다. 토요일마다 등장하는 뻥아저씨는 장마철 빼고는 여간해서는 결석하지 않는다.

 

오늘은 현미를 튀겨볼 참이다. 묵은쌀을 튀겨서 이웃들과 나누어 보리라. 벌써 율무 옥수수 보리 쌀 등이 번호표를 받은 채 노란 깡통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 아파트 뒤쪽 샛문 앞,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은행나무 아래 담벼락에 의지해 진열대를 세웠다.

 

누구나 좋아하는 쌀 튀밥은 어느새 몇 보따리 쌓여 있다. ‘기름에 튀기면, 책상다리 빼고는 다 맛있다라는 말도 있지만, 기름 없이 튀긴 것은 담백하고 고소하다. 게다가 아사삭부서지는 식감이 경쾌할 뿐 아니라, 입을 심심치 않게 달래주는 것이 매력이다.

 

아저씨는 콩이나 누룽지, 은행 무말랭이 돼지감자 도라지, 마른 떡까지, 돈 빼놓고 무엇이든 다 튀긴다고 했다. 쌀이나 옥수수 같은 곡류는 15배나 커진다는데, 꿈은 몇 배로 튀겨질 수 있을까. 소쿠리의 강냉이가 닳아지도록 마룻바닥을 뒹굴며 그런 공상에 빠졌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 그는 ‘Mr 으로 불렸다. 아랫목의 담요 속에 발을 뻗고 둘러앉으면 어딘가 모를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곤 했다.

 

전축을 틀어놓고 연필을 흔들어 카라얀 흉내를 낸다든지, 낯선 음악가들을 들먹이며 열중하는 그의 모습은 농과대학생이 아니라 음대생 같았다. 동생의 학습을 도와주는 건 잠깐이고, 늘 음악에 취한 어릿광대 같았다.

 

너는 뭐 하러 그런 허풍을 듣고 있니?” 언니는 툭하면 핀잔을 주었다. 허풍일까?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음악이 세상을 구원할 것만 같았다. 집안을 울리던 음악은 그가 돌아가고 난 후에도 둥둥 가슴에서 울렸다.

 

고향을 떠난 한참 후 그의 소식을 들었다. 변두리 어디에 집을 짓고 음악실을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음악을 꽝꽝 틀어도 밖으로 소리가 들리지 않는 방음벽 방을 만들겠다고 뻥뻥거리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허구한 날 읊어대던 명품 스피커와 앰프, 턴테이블. 원판 등을 하나하나 모으는 기쁨은 얼마나 설렜을까. 꺽다리에 실없어 보이던 허풍이 허풍이 아니었나 보다.

 

나는 무엇을 꿈꾸었을까. 쌀 한 톨도 열다섯 배나 부풀 수 있는데, 꿈의 씨앗을 찾아야 부풀리든지 싹 틔우든지 할 거 아닌가. 좋아하던 그림 그리기도 금지되었고, 매혹되었던 바이올린도 손에 닿지 않았다.

 

꿈을 꾸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이 가슴만 울렁일 뿐, 손은 비어 있었다. 연필 한 자루로 허공에 음악을 그리는 그는, 그 허풍이 꿈의 씨앗이었을까.

 

어쩌면 내 꿈의 씨앗은 외로움에서 싹텄는지도 모른다. 그가 음악에 심취되어 젊음을 살았듯이, 나는 방학 중에도 학교에서 살았다. 중학교의 커다란 도서관은 쓸쓸했지만 깊은 세상이었다. 책은 물가의 나무같이 나를 푸르게 했다. 몇 광년씩이나 달려와서 기어이 내 눈에 닿는 별빛처럼 나도 꾸준히 달려가기로 했다.

 

무엇이 되고자 한 건 아니었다. 그냥, ‘사람이 되기로 했다. 사람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고, 성실하고 활기 있게 사는 사람. 어슴프레 내 삶의 태도를 정했다. 그러면 별빛처럼 어디엔가 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먹어서인지, 쓰러졌다가도 문득 부스스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떤 재난으로, 또는 다른 이유로 길이 막히거나 꺾였을 때 시간이 걸렸지만, 일어설 수 있었다.

 

어떤 꿈은 남에게, 자신에게조차도 안보일 수 있다. 우물 속의 수정처럼 너무 깊이 박혀서 아주아주 오래 들여다봐야 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진행형인 것 같다. 은퇴한 지금도 무엇을 해보려 하는 건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권영순, 뻥이요, oil on canvas 2021

 

얼추 시간이 된 것 같아서 트럭을 향해 걸어가는데, 갑자기 !’ 소리가 났다. 하얀 연기와 함께 구수한 냄새가 풍겨왔다. 둘러섰던 아주머니들과 한 주먹씩 튀긴 현미를 먹어본다. 따끈하고 아삭하고 고소한 것이 옛날 맛 그대로이다. 옆에서는 손바닥만 한 기계가 돌아가며 톡톡 소리와 함께 동그란 뻥튀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한 숟가락이 접시 크기로 커지다니, 늘 보아도 마법 같다. 아저씨는 맛보기로 꼭 두 개씩 준다. 한 개는 정이 없다나. 웃음이 점퍼처럼 두툼하다. 주머니 속에 찔러넣은 따끈한 쌍화탕 한 병을 내밀었다.

 

뻥튀기는 아직 곁에 있어 추억을 돋게 한다. 뻥튀기 아저씨같이 Mr 뻥도 삶의 향기를 퍼뜨리며 살고 있겠지. ‘뻥이요!’ 소리는 나에게만 즐겁게 들리는 소리는 아니다. 어느덧 만국 통용어가 되었다고 한다. 멀리 아프리카 사막 땅에서도 우리나라의 뻥튀기 기계가 돌아간다고 한다.

 

잘록한 호리병 같은 검정 기계가 뱅글뱅글 돌아가면, 머리카락이 뽀글뽀글한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뻥이요~!’라며 한국말로 함께 외친다니, 알라딘 램프가 따로 있겠나. 상상만 해도 즐거운 풍경이다.

 

뻥이요!’꿈이요!’라는 뜻으로 들렸으면 좋겠다. 열 배 이상 불어나는 곡식같이, 그들의 꿈과 행복의 씨앗도 튀겨지면 얼마나 좋을까!

 

프로필

춘천 출생, 가톨릭대(성심) 국어국문학, 백석대 상담학 가정사역 전공(MA), 23년 인간과 문학(겨울 44) 수필 신인상, 23년 월간문학 (12658) 시 신인상 등단, 현 광주광역시 거주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밴드 밴드 구글+ 구글+
기사입력: 2024/10/05 [06:49]  최종편집: ⓒ 투데이리뷰 & 영광뉴스.com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관련하여 정당·후보자에 대한 지지·반대의 글을 게시하고자 할 경우에는 '실명인증' 후 게시물을 등록하셔야 합니다. 실명확인이 되지 않은 선거관련 지지·반대 게시물은 선관위의 요청 또는 관리자의 판단에 의해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본 실명확인 서비스는 선거운동기간(2018-05-31~2018-06-12)에만 제공됩니다.
일반 의견은 실명인증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제52대 장 세 일 영광군수 취임사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하루종일 돌다보니 그냥 하나다” / 림삼 / 시인
지나친 성생활 피해야…잦은 설사도 촉발 / 선재광박사
11월 14일 수능, 이것만은 꼭 기억하세요 / 교육부
산티아고 그 두 번째, 포르투갈 길 / 문화부
새만금 수변도시 통합개발계획 변경 추진 / 경제부
식량농업기구(FAO) 세계식량가격지수 전월 대비 2% 상승 / 경제부
한강 작가 “한국 인문학 부흥의 전기를 열다” / 이창미 칼럼니스트
‘10·26 사건’ 다룰 영화 ‘파천(破天) 1026’ 최위안 감독 인터뷰 / 문화부
박종형 수필집 ‘나를 기다리는 동고비’ / 문화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회원약관청소년 보호정책 회사소개광고/제휴 안내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ΰ 발행인·편집인 蘇晶炫, 발행소:영광군 영광읍 옥당로 233-12, 청소년보호책임자 蘇晶炫 등록번호 전남 아00256, 등록일자 2014.09.22, TEL 061-352-7629, FAX 0505-116-8642 Copyright 2014 영광(전남) 뉴스 All right reserved. Contact oilgas@hanmail.net for more information. 영광(전남) 뉴스에 실린 내용 중 칼럼-제휴기사 등 일부 내용은 본지의 공식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영광(전님) 뉴스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본지는 신문윤리강령 및 실천강령을 따릅니다.